“엔저 지속되면 97년ㆍ2008년 경제위기 재현 우려”

엔저현상이 지속될 경우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경제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최근 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양적완화에 따른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방향을 둘러싸고 김중수 한은 총재와 경제학자들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도 벌어졌다.

오정근 고려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21일 고대에서 열린 ‘2013년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미국 지지에 힘입어 아베노믹스가 탄력을 받으면 1997년, 2008년과 같은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며 “기존 거시건전성 3종 세트로는 자본유출입 변동성을 완화하기 부족한 만큼 금융거래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과거 두 사례에 비춰볼 때 지난해 4ㆍ4분기 원ㆍ달러 환율 추이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원ㆍ달러 환율 균형수준이 1,118원인데 실제는 1,090원으로 원화가 2.5% 고평가 됐다는 것이다.

이날 학회에서 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양적 완화에 따른 통화정책 방향을 놓고 경제학자들간 열띤 토론도 벌어졌다. 특히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이례적으로 직접 중앙은행 통화정책에 대한 발표에 나서면서 경제학자들의 토론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김 총재는 이날 발표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통화정책’에서 “물가안정목표제를 유연하게 운용하면서 경제성장세 회복을 위해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새 정부와의 정책공조를 염두에 둔 발언인 셈이다. 그는 “중앙은행의 역할은 지난 수십 년 간 파티에서 ‘펀치 그릇’을 치우는 것으로 인식됐지만, 파티가 없거나 분위기가 식게 되면 정부와 함께 정책적 노력을 해 국민경제 발전을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달라진 위상에 대해 참석자들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양원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장은 “중앙은행이 시장하고 좀 더 소통에 힘써줬으면 좋겠다”며 “시장에선 한 달에 한번 열리는 금통위를 기준으로 금리를 예측하고 움직이는데 중앙은행 결정을 받아들이기보다 억측을 할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 신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도 “중앙은행이 실수가 있었다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만약 그렇다면 중앙은행 스스로 통렬한 자기반성이 있었는가 짚어봐야 할 것”이라며 “물가상승률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결여되기 시작했고 그게 비극의 시작이라 본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앙은행이 이제 ‘물과 댐을 같이 관리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총재는 “나타나지 않은 위기는 위기가 아니고, 비용만 발생한다. 한은은 위기가 터진 이후에 대응하면 된다”는 논리로 반박했다. 그는 “한국은행의 금리결정은 시장효과로 입증되는 것이지 점쟁이처럼 몇 월에 내릴 지에 따라가는 게 아니다”라고도 했다. 이어 “중앙은행의 독립은 정치, 행정부, 시장에서의 독립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포퓰리즘에 견딜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핫머니 규제에 소극적이라는 플로어 지적에 대해선 “관리를 어느 정도 하는데 중앙은행이 다 할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일본의 엔저공세에 대응할 때 ‘속도’만을 강조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박영철 고려대 석좌교수는 “엔화의 평가절하는 외환시장만 가지고 금방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최대한 국제회의를 통해 우리 입장을 밝히고, 그 속에서 역할을 하면서 우리 입장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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