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ㆍKnock In, Knock Out)’거래로 이익과 손실을 여러 번 본 업체라도 거래 위험성에 대해 은행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면 은행의 배상책임이 인정된다는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또 피해를 입은 업체가 소송을 낼 수 있는 소멸시효를 10년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도 처음 나와 앞으로 다른 업체들이 추가 소송에 나설지 관심이 쏠린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최승록 부장판사)는 17일 산업용 디스플레이 생산업체 코텍이 한국씨티은행과 홍콩상하이은행(HSBC)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기업에 총 77억여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코텍이 청구한 금액의 70%를 배상하라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이미 키코 거래로 여러 차례 이익과 손실을 봤더라도 은행 측이 거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면 ‘설명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재판부는 “코텍은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씨티은행과 21건의 키코 거래를 하며 손실 4억여원, 이익 6억여원을 보는 등 최종적으로 2억원의 이익을 경험해 키코 거래의 기본적인 내용과 구조를 인식하고 있었던 점은 인정된다”면서도 “이것 만으로는 기업이 키코 거래의 위험성을 ‘은행이 아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알 수 있을 만큼 은행이 충분히 설명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은행의 설명의무 위반 논점에 대한 종전 판결과는 차이를 보인다. 앞선 판결들에서도 법원은 “금융상품 판매자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까지 투자자가 거래 위험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어야 한다”는 점은 인정된 적은 있지만, 거래 경험이 이미 있는 업체에 대해서도 은행이 설명을 제대로 했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재판부는 소멸시효가 은행이 주장하는 3년이 아니라 최대 10년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내렸다. HSBC 측은 ‘코텍이 (원화 값이 폭락했던) 2008년 5월 또는 6월께 손해 발생 사실을 알았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1년 7월에 소송을 냈으므로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손해가 HSBC의 설명의무 위반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코텍이 알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키코 거래를 민법상 불법행위로 봤을 때는 기업이 손해를 입은 시점부터 3년 내에 소를 제기해야 하고, 손해액을 은행이 챙긴 부당이득으로 본다면 소멸시효는 10년까지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키코 피해를 본 중소기업들이 추가적으로 소송을 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설명의무ㆍ시효 등에 대해 항소심에서 명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