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에 고국서 선보이는 선·자연의 변주곡… 재미작가 2인 개인전

■ 존 배 '기억의 은신처'
철사 무작위로 이어붙여 의도치 않은 조형물 창조
■ 최동열 '신들의 거주지…'
상징적인 누드·정물 더해 히말라야 풍경 독특한 묘사

존 배의 '유한한 공간에서 길을 잃다'

최동열의 '누드 안나푸르나'

고국을 떠나 멀리 타향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재미작가 2명이 공교롭게도 2006년 이후 7년 만에 다시 고국을 찾아 개인전을 갖는다. 세계적인 설치 조각가 존 배(76)는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오는 25일까지 개인전 '기억의 은신처'를 선보인다. '한국의 고갱'이라 불리는 최동열(62) 작가는 '신들의 거주지-안나푸르나, 칸첸중가'전을 오는 16일까지 인사동 선화랑에서 갖는다. 일제 시대 독립운동을 펼쳤던 조부 혹은 부친의 영향으로 타향에서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아온 재미작가 2인의 작품이 어떤 화두를 던질지 주목된다.

◇재즈의 선율처럼 우연에 의해 형태가 결정되다= 존 배는 일제시대 독립 운동을 했던 아버지(배민수)를 따라 열두 살이던 194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부모는 14살인 어린 아들을 미국에 홀로 남겨 두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존 배는 미술에 소질을 보여 뉴욕 플랫인스티튜트(종합예술대학)에 4년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으며 27세 때인 1965년 이 대학에 신설된 조각과 최연소 학과장을 맡았다. 그는 대학시절 맨하튼에서 열린 미국의 용접 조각가 테오도르 로작의 작품전을 보고 영감을 받아 철사를 재료로 조형 활동을 시작한다. 철사를 이어 붙여 작업하는 그의 작품은 작은 정사각형이나 반원 같은 작은 도형에서 시작한다. 이번 전시에는 2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영원한 순간'과 '원자의 갈비뼈' 같은 작품은 무수한 선이 무작위로 휘어 형성된 기형적 육면체를 만들어낸다. '철 무지개' '믿음의 도약' '모서리에서부터' 같은 작업은 직선적 형태를 바탕으로 육면체가 탄생했지만 격자무늬 구조의 독립적 형태를 엿볼 수 있다. 반원형이 곡선과 결합된 구조로 만들어진 '의도치 않은 결과'는 처음에 작가가 의도했던 모습과 나중에 완성된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으나 의도치 않은 결과가 작가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든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과정을 재즈음악가의 즉흥 연주에 비유했다. "즉흥 연주는 연주가에 따라 곡이 달라지고 어떻게 끝이 날지 모릅니다. 내 작품도 순간순간마다 우연한 선택에 따라 형태가 결정되고 탄생하고 있습니다."

◇히말라야 고지에서 완성하는 특별한 자연의 변주곡= '한국의 고갱'이라 불리며 한국보다 미국에서 먼저 유명해진 재미작가 최동열. 그가 히말라야를 내 집 앞마당 드나들 듯 다니며 여러 봉우리를 배경으로 그린 독특한 풍경화 40여점을 인사동 선화랑에서 선보인다. 2011년 봄 네팔 히말라야 중부의 안나푸르나 산맥을 돌아다니다 베이스캠프인 촘롱마을에서 그린 작품, 그 해 가을 칸첸중가를 트래킹하다가 종그리 마을에 머물며 그린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보이는 대로 정밀하게 묘사하는 대신 상징적인 누드나 정물을 더해 자신만의 시각으로 히말라야의 다양한 얼굴이 닮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 뒤에는 범상치 않은 삶의 흔적이 녹아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우정국 사건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학교를 세운 독립운동가인 동시에 민족대표 33인을 변호한 우리나라 초대 변호사였다. 나도향의 누나였던 할머니는 우리나라의 첫 피아니스트였다. 장손으로 집안의 기대를 받으며 자란 작가는 17세때 해병대에 지원해 베트남 전쟁에서 2년여간 첩보활동을 한 독특한 이력도 있다. 제대 후 미국으로 건너가 술집 바텐더, 태권도 사범 등을 하다가 그림에 눈을 떴으며 어느덧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인정 받아 '한국의 고갱'이란 별칭까지 얻는다. 그는 "히말라야 산 깊숙이 들어와 칸첸중가, 안나푸르나, 마체푸체레 등 세계적으로 높은 봉우리를 쳐다보면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포근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