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9월 30일] 불통(不通)을 뚫으려면

"지난 일주일간 협상을 몇 번이나 했나요?" 답을 위해서는 우선 '협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적 혼란을 낳았던 쇠고기 협상, 미디어법 처리를 둘러싼 여야 협상, 계약단가를 깎기 위한 거래처와의 협상…. 많은 사람들은 이런 것들만이 협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의 하루를 생각해보자. 갑자기 용돈을 올려달라는 아이, 업무 협조를 거절하는 다른 부서 직원, 피곤한 당신에게 이번 주말에는 꼭 교외로 놀러 가자는 아내, 이 모든 일들이 협상의 연속이다. 협상이란 테이블에 마주 앉아 벌이는 거창한 말싸움이 아니다. 협상은 양측이 서로 다른 것을 원할 때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벌이는 커뮤니케이션이다. 협상의 '원리' 배워서 활용을 그렇다면 협상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협상의 '원리'를 배워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중학생 사내 아이와 아빠가 있다. "아빠, 용돈 2만원만 올려주세요" "안 돼!" 이어 부자간의 협상이 시작됐다. '2만원 인상' vs '용돈 동결'. 이처럼 협상할 때 등장하는 각자의 '요구'를 협상학에서는 포지션(position)이라 부른다. 양측이 요구에만 집착할 때 협상은 까칠해진다. 이럴 때 좋은 협상가는 요구가 아닌 욕구(interest)에 주목한다. 상대가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요구 밑에 있는 진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한다는 뜻이다. 아빠가 '용돈 인상 불가'라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용돈을 2만원 더 준다고 해서 가정경제가 파탄 나는 일은 없다. 그런데 왜(?)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 아빠는 아들이 돈을 낭비하게 될까, 또 돈이라는 것이 노력 없이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을 갖게 될까 걱정한다. 이것이 바로 아빠의 욕구다. 만약 아들이 협상가적 자질이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함부로 돈 쓸까 봐 걱정되시죠? 용돈 기입장을 써서 매주 보여 드릴게요. 그리고 세상에 공짜가 있나요? 주말마다 아빠 차를 닦을게요." 어떤가. 당신이 아빠라면 용돈을 올려주지 않겠는가. 이 제안은 '아들이 낭비하지 않고 돈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아빠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아들 입장에서는 약간 귀찮더라도 용돈을 더 받을 수 있어 좋다. '용돈기입장 쓰기' '일주일에 한 번 세차' 등은 이 협상을 타결시킨 제3의 '창의적 대안(Creative Option)'이다. 협상의 원리는 국가 간의 문제를 푸는 데도 도움을 준다. 대표적 사례가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평화협상. 지난 1967년 이스라엘은 유명한 '6일 전쟁'을 통해 이집트 영토의 일부인 시나이반도를 빼앗았다. 뺏은 자와 빼앗긴 자 간의 대립은 갈수록 격화됐다. 결국 미국이 중재에 나섰다. 이집트의 요구는 간단했다. "뺏긴 땅 전부를 돌려달라" 이스라엘의 답은 차가웠다. "일부만 돌려줄게" '100% 반환'과 '일부 반환'이라는 요구가 맞붙은 모습이다. 욕구 파악후 창의적 대안 내놔야 중재자 역할을 맡은 밴스 미국 국무장관은 양측의 욕구 파악에 주력했다. 그 결과 이집트는 자존심(주권) 회복을, 이스라엘은 안전을 보장 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양측의 욕구를 파악한 밴스는 창의적 대안을 내놓았다. "땅은 100% 이집트에 돌려주되 비무장지대로 한다." 양측의 욕구를 절묘히 충족시킨 밴스의 아이디어 덕분에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윈윈 할 수 있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불통(不通)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국민과 정부, 여당과 야당, 회사와 노조, 자식과 부모 등 많은 관계에서 소통이 안 된다며 답답함을 하소연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불통'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하는 '파괴적 갈등'으로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불통의 시대를 뚫기 위해서는 어떡해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협상의 걸음마'부터 새롭게 배워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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