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을 앞둔 모 건축가는 자서전에서 `파고다공원을 놀이터 삼아 놀던 시절 최대 희망은 삼일빌딩의 층수를 끝까지 세는 것`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실제 그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60년대 말 종로구 관철동에 삼일빌딩이 위용을 드러냈을 때 맞은 편 도로는 층수를 세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고 전하고 있다.
여의도 63빌딩 완공 전까지 국내 최고층 건물의 지위를 지켜온 삼일빌딩. 이 건물은 근대화의 상징이자 동시에 한국 건축사에 길이 남을 만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 빌딩이다.
◇순수 국내 기술로 완공 = 연면적 1,782평ㆍ높이 114mㆍ층수 31층의 삼일(31)빌딩은 명칭에서 드러나듯 민족적 정서가 듬뿍 베인 건물이다. 실제 이 빌딩은 기본 설계부터 완공까지 `한국인 건축가` 고(故) 김중업(1922~1988)에 의해 이뤄졌다.
초고층 건물 설계는 요즘도 국내 기술력으로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 그 당시 발주자인 삼미사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람을 쓰자`며 주장했다. 이에 대해
`건물이 무너질 것이다` `허구 맹랑한 발상이다`등의 비판도 제기됐지만 그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의 야심(?)과 맞물리면서 한국인 손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초고층 빌딩이 빚을 보게 됐다.
◇근대화ㆍ일제 청산 상징 = 삼일빌딩은 독립성과 가변성이 뛰어난 평면 구성과 착색 유리가 끼워진 알루니늄 외벽 등으로 인해 서구의 마천루를 연상시킨다. 반면 층수을 31층으로 해 명칭을 삼일빌딩으로 한 것 등은 `근대화ㆍ일제청산`이라는 시대적 의미의 한 표현이다.
69년 완공 당시 35년 완공된 화신백화점과 더불어 서울의 관광명소로 삼일빌딩은 인기를 누렸다. 화신백화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관철동에 들어 삼일빌딩을 구경하는 것이 공식화 돼 있었다.
이 빌딩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산업은행의 소유 본점으로 활용됐다. 그러나 지금은 재미교포인 한 외국법인이 500억원 가량에 사들여 사실상 외국인 소유 건물로 존재하고 있다.
<이종배기자 ljb@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