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금감위원장의 자리

관료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공무원 집단을 두루 접하면서 기자는 항상 이런 의문을 품어왔다. 때론 “과연 이들에게 나라의 미래를 맡겨도 될 것인가”라는 회의에 빠져들면서도 “그래도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라는 존경심만은 버리지 않으려 애썼다. 진념ㆍ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으로부터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 조원동 재경경제부 차관보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튀는 관료’들에게 ‘천재’라는 닉네임을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너무 순박했던 것일까. 최근 만난 고위관료는 이런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시장이 인정하는 실력 있는 관료였다. 그의 말은 이랬다. “수십년 관료생활을 해왔지만 요즘 동료들을 볼 때마다 자괴감이 들어. 장ㆍ차관 한번 해보겠다고 대통령한테 눈도장 찍으려 안달복달하고 온갖 학연ㆍ지연에 매달리고….” 적나라하게 실상을 전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허무함을 넘어 냉기마저 흘렀다. 그의 발언을 굳이 구구절절 옮기는 것은 한달 앞으로 다가온 금융감독위원장 인선 때문이다. 기자는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혹한기를 지내는 동안 금감위를 출입했고 이후에도 관심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시장에 대한 금감위 권능의 절반은 위원장의 역량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역대 위원장들의 능력에 따라 금감위의 힘은 부침을 거듭했다. 그런 면에서 현 위원장은 ‘훌륭한 심판’이었다. 임기를 수개월 남겨놓은 시점부터 후임에 관심이 집중됐던 것도 그의 존재감이 시장에 그만큼 컸던 탓이다. 그렇다면 후임에 오르내리는 인물들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어떤가. 개인적 판단에서야 그들의 면면은 모두 뛰어나다. 국제금융 시장에 대한 해박한 지식, 금감위와의 깊은 인연 등…. 하지만 시장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하다. 시장은 영악한 것 같으면서도 단순하다. 솔직히 지금 시장의 우선 평가요소는 그들의 능력이 아니다. 후보군의 고향과 대통령과의 인연 등을 우선 꼽는다. 비틀어진 인사의 오랜 관행 탓이겠지만 못지않게 그들의 카리스마를 시장이 모르고 있는 것도 이유다. 시장은 자율을 바라면서도 속으로는 힘을 원하고 복종하기를 원한다. 결국 답은 명쾌해진다. 확고한 리더십을 갖춘 인물을 택하든지 대통령이 나서서 모자란 카리스마를 채워주든지. “6개월짜리 장관인데…”라며 적당히 때우려 한다면 오산이다. 금감위원장은 그런 자리가 아니다. 수년 전 정권과의 인연에 의해 금융 당국 수장 자리에 올랐던, 그리고 결국 실패로 귀결됐던 인사가 재연돼서는 정말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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