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호랑이 한 마리는 암컷 호랑이 네 마리를 거느리느라 적과 싸우고 인간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싸우죠. 동물과 인간의 가장이 서로 충돌하면 어떤 결말이 나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불멸의 이순신' '눈먼 시계공' 등 장르를 넘나드는 소설을 써온 김탁환(42ㆍ사진)씨가 이번에는 호랑이와 인간의 싸움을 들고 돌아왔다. 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씨는 "지금 시대의 화두는 '진짜 적(敵)이 누구인가'라고 생각한다"며 "적이 없는데도 적을 상정하고 이기려고 하는 모습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의 모습이며 가장들의 싸움을 그리고 싶었다"고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밀림무정'은 조선의 마지막 야생호랑이 '백호(白虎)'와 그 뒤를 쫓는 포수 '산(山)'의 대결을 그린 이야기다. '산'은 백호에게 아버지와 동생을 잃었고 '백호'는 산에게 암컷과 새끼를 잃었다. 이 과정에서 '산'과 '백호'는 도심과 밀림을 넘나들며 치열하게 싸운다. '밀림은 자유고 도심은 공포다. 호랑이에게는 그렇다. /도심은 자유고 밀림은 공포다. 인간에게는 그렇다.' 김 작가는 이 두 줄의 글귀를 가지고 작품을 썼다고 설명했다. 1권은 호랑이에게 자유로운 밀림, 개마고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고 2권은 인간에게 자유로운 도심, 서울에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개마고원의 설산을 헤매는 포수가 됐다가 1940년대 경성 시가를 누비는 백호가 되기 위해 작가는 러시아의 라조 지역으로 답사를 가서 호랑이의 자취를 쫓기도 하고 북한 자료에 남아 있는 우리나라 야생호랑이의 흔적을 살펴보고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는 "나는 영상이 보여야 쓸 수 있는 작가라 직접 장면을 떠올리기 위해 자료조사를 충실히 했다"며 "카프카보다는 헤밍웨이나 톨스토이처럼 큰 스케일로 박진감 넘치는 문체를 쓰는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은 싸워보기도 전에 자신을 위로하고 알아서 피해가는 말랑말랑한 책이 많다"는 김씨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처해 있는 틀을 벗어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어떤 적과 싸워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