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의 탄성이 터졌다. 주식시세를 곧바로 전해주는 주가표시기가 선보였기 때문이다. 1867년 11월15일의 일이다. 거래체결 정보를 들고 월가를 뛰어다니는 소년들이 일자리를 잃고 몇시간 전 주가표를 파는 정보지 업자가 망했지만 주가표시기는 주식투자의 저변을 넓혔다. 발명자는 전신기사 캘러헌(Edward Calahan). 특허를 팔아 10만달러(요즘 가치 1,332만달러)를 챙겼다. 폭 1인치(2.54㎝)의 기다란 종이끈에 상장사 이름과 주가ㆍ거래량이 찍혀 나오는 표시기의 속도는 초당 알파벳 한 글자. 속도가 느리고 고장이 잦아도 표시기는 뉴욕 부근에 한정돼 있던 주식투자 가능지역을 미국 전역으로 넓혔다. 마침 이리 철도를 둘러싼 큰손들의 공방전이 한창이어서 주가도 날개를 달았다. 발명왕 에디슨도 주가표시기로 기반을 잡았다. 뉴욕거래소 보일러실 모퉁이에서 1870년 제작한 캘러헌 표시기의 개량품 특허권을 4만달러에 팔아 연구자금을 마련한 것. 에디슨 표시기는 큰 개량 없이 1966년 전자식 표시기로 바뀔 때까지 쓰였다. 투자자들은 표시기를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공평한 정보원’이라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거래가 많은 날이면 표시기는 매매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1929년 10월 대공황 당시에는 매매정보가 두시간씩 늦게 나와 투자자들의 손해를 키웠다. 투기꾼과 결탁한 거래소 내부직원이 투자순서를 바꿔 입력하는 수법으로 시세를 조종하는 경우도 생겼다. 주가표시기가 등장한 지 139년, 일반투자자들이 접하는 주가정보의 수준은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다. 컴퓨터와 통신기술 발달 덕에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지만 불공정거래는 끊이지 않는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