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7월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

경부고속도로는 한국 근대화의 상징이다. 추풍령에 세워진 준공 기념탑에는 ‘조국 근대화의 길이며 국토통일의 길’이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이 새겨져 있다.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에게 경제개발의 꿈을 실현시킬 신앙과도 같은 존재였다. 1964년 12월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리며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 마음먹은 박정희는 1967년 4월 이를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발표했다. 당연히 야당을 중심으로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재정파탄이 날 것이다’ ‘부유층의 유람로가 될 것이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국회 건설위원회 소속의 김대중 의원도 고속도로 건설이 지역 불균형을 가져온다며 적극 반대했다. 물론 그도 고속도로 건설 자체에 대해서는,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럼에도 그는 “머리보다 다리가 크고 양팔과 오른쪽 다리가 말라버린 기형아 같은 건설”이라고 규정했다. 영남 지역의 교통망 집중이 강원과 호남의 불균형을 심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정희는 일본 가마쿠라 시대의 한 승려가 쓴 ‘방장기’에 나오는 말을 인용해 “바람이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번다”는 말로 응수했다. 경제 문제가 서로 함수관계에 있고 효과도 다각적이라는 비유였다. 경부고속도로의 연쇄적 연관성 때문에 서울과 영남 말고 나머지 지방들도 개발의 떡고물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1968년 2월1일 첫 삽을 뜬 경부고속도로는 드디어 1970년 7월7일 전 구간 왕복 4차선 도로로 개통됐다. 428㎞의 도로가 2년5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종전 며칠씩 걸리던 서울~부산 왕복 화물운송이 하루 만에 이뤄졌다. 그러나 밀어붙이기식 공사로 77명이나 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토지 헐값 매수로 인한 재산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기도 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