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위에 선 나라살림] <4> 구멍난 지방재정

예산 당겨쓰고 지방債로 메우고… "지자체 빚쟁이 전락"
경기 침체에 중앙정부는 감세 내년에만 10조원'펑크' 예상
지방채 발행 이자등'눈덩이' 주민들에 부담 떠넘겨질 우려



서귀포시는 최근 인위적으로 공공근로사업(희망근로 프로젝트)의 일수를 줄였다. 지방비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급여를 지급하기가 빠듯해졌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아예 근로일수를 줄인 것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는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지방재정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내년에도 세수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조기 위기극복을 위해 예산을 앞당겨 쓰고 모자란 부분은 지방채 발행으로 메우다 보니 지방자치단체들은 빚쟁이 신세로 전락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지자체장들에게 예산을 조기 집행해줘 경기회복에 도움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정작 지자체의 곳간은 텅 비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빚은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져 극단적으로 표현해 지자체가 신용불량자가 될 판이다. ◇경기침체와 감세, 내년에만 10조 펑크=경기침체와 중앙정부의 감세정책으로 내년 한해에만 지방재정은 10조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안전부가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2010년 예산요구안에 따르면 내년 지방교부세는 올해보다 4조1,474억원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지방교부세란 중앙정부가 국세 수입 일부를 자치단체에 이전해주는 재원이다. 특히 경북(4,804억원), 전남(4,474억원), 강원(3,422억원), 전북(3,183억원) 등 재정여건이 좋지 않은 지자체일수록 지방교부세가 큰 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지원 의존도가 큰 지자체들은 당장 살림살이를 꾸리기가 힘들어졌다. 감세에 따른 세금감면 규모가 늘어나는데다 종합부동산세 감소로 부동산 교부세가 줄어드는 데 대한 목적예비비 편성 지원이 없어 지자체들은 막막할 따름이다. 결국 각 지자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예년보다 앞당겨 2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해 지자체 재정자립도는 전국 평균 53.9%에 그친다. 그나마 서울(85.7%)과 경기도(66.1%)는 나은 수준이지만 강원도(23.3%), 전남도(11.0%), 경북도(20.7%) 등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이동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당분간 재정건전성이 좋아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듭된 지방채 발행…빚으로 빚을 메우다=전라남도 의회는 최근 F1 경주장 건설비 마련을 위해 880억원의 지방채 발행을 승인했다. 광주시는 미관광장 생태숲 사업비를 지방채 발행으로 충당했고 2015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유치에 따른 분담금 300억원도 지방채를 발행해 해결해야 할 형편이다. 가용 예산이 부족하자 지자체들은 지방채 발행으로 이를 메우고 있다. 빚을 져서라도 급한 불을 끄겠다는 심산이다. 중앙정부도 필요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지자체에 지방채 발행을 독려하고 나섰다. 늘어나는 지방채 잔액만큼 지자체의 채무부담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심각한 재정악화가 우려되는 것이다. 행안부가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실에 제출한 지방채 현황 자료를 보면 지방채 발행 총액은 지난해 말 19조486억원에서 올해 말 25조8,725억원으로 36%나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충남은 지난해 말 1,376억원에서 올해 두배에 가까운 2,300억원이 증가해 4,000억원대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 4월까지 16개 전국 지자체의 일시차입금은 2조3,521억원으로 지급된 이자만 155억원에 달한다. 지자체들은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미리 자금을 집행한 뒤 정부에서 예산이 나오면 갚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역시 지자체의 재정능력을 무시한 예산 조기집행으로 지자체의 부실이 가중될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정부는 일시차입금으로 발생한 이자의 1%만 국고로 보조하고 있고 나머지는 지자체 예산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지역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지방채 발행 중단을 촉구하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지자체가 지는 빚은 고스란히 주민 부담으로 떠넘겨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내년 지자체장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사업을 위한 지방채 발행 추진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민간연구소의 한 선임 연구위원은 "가뜩이나 지방 곳간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 선거를 앞두고 쓰고 보자는 심리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장기적인 세수확보 노력과 함께 선심쓰기용 예산 낭비에 대한 감시장치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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