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총액 2조 넘는 상장·등록기업에 우선 적용법무부가 재정경제부ㆍ민주당과 협의해 마련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시안은 기업 경영이 주주중심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기업의 투명성 제고에 초점을 두고 있다.
주가조작과 분식회계 등 우리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어온 기업의 고질적 병패를 막고 선량한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재계는 시기상조론을 내세워 집단소송제의 도입을 보류하거나 적어도 소송요건만은 엄격히 제한할 것을 주장하고 있고, 반대로 시민단체는 정부안이 소송요건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규정, 유명무실화해 질 우려를 제기하고 있어 입법과정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 도입 배경과 효과
증권관련 집단소송제 도입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권고에 따른 것으로 외환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돼 온 부실재벌에 대한 개혁 정책의 하나로 추진됐다.
대우ㆍ동아건설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들 기업의 분식회계는 해당 기업과 주주의 피해에 그친 것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부실과 막대한 공적자금의 손실을 초래하는등 국민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쳐 기업지배구조의 선진화가 시급한 과제로 부각됐다.
법무부는 지난해 6월 외부용역을 통해 기업지배 개선안을 마련했으며 정부는 이에 따라 사외이사의 역할과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고 집중투표제를 도입했다. 이어 이번에 마지막으로 집단소송제 도입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이 법안이 시행될 경우 내년 4월부터 기업들이 불법 행위를 했을 때는 막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돼 기업 경영의 투명성이 한층 높아질 뿐만 아니라 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적용대상 기업 및 소송대상
정부는 집단소송제 적용 대상을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증권거래소 상장기업과 코스닥등록 기업으로 제한했다.
정부는 우선 큰 기업들을 상대로 먼저 시행해보고 점차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이에 해당하는 상장기업은 84개, 등록기업은 8개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집단소송의 실효성을 위해 적용대상 기업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어서 진통이 예상된다.
참여연대는 "지난 98년 이후 지난 8월말까지 검찰에 통보 또는 구속기소된 주가조작사건 91건중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은 단 2건으로, 나머지는 자산규모 2조원 이하"라고 지적했다.
손배청구 위법행위는 집단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업의 위법행위로 ▦허위공시 ▦분식회계 ▦주가조작 ▦미정보공개 이용 등 4가지로 한정했다. 미정보공개 이용행위가 정부의 당초 계획과는 달리 추가됐다.
주목되는 것은 주가조작과 미정보공개 이용 행위의 경우 기업의 자산규모에 관계없이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했다.
'이용호 사건'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시세 조정과 내부 정보를 이용한 시세 차익 등 불공정 주식거래 행위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기업들에는 위협적인 조항으로, 불공정 행위가 만연한 증시의 건전성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 소송 요건 및 절차
피해자가 50명 이상일 때만 소송을 허용, 소송 남발을 막기로 했다.
참여연대는소송 구성인원에 제한을 두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재계는 1,000명 이상을 주장하고 있다.
소송꾼의 등장을 막기 위해 장치도 마련했다. 소송을 수행하는 대표주주와 소송대리인(변호사)은 최근 3년간 3건 이상의 집단소송에 관여한 적이 있으면 소송에 참여할 수 없도록 했다.
또 소송을 제기할 때 내야하는 인지액의 상한선을 5,000만원으로 정해 비용 부담이 소송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했다.
주주들이 법원에 소송을 내면 법원은 증권거래소와 증권업협회에 통보, 일반인에게 공시하도록 했다.
법원은 소송 허용 여부를 결정하고 재판때 필요하면 직권 조사하거나 신문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됨으로써 소송 남발로 인한 기업 피해를 막고 소송의 실효성도 높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대표주주나 소송대리인 등이 소송 과정에서 기업이나 주주 등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돈을 받는 등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요구할 때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그 이익은 몰수되며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도 받을 수 있다. 금품을 주거나 약속하는 사람도 같은 처벌을 받게 된다.
윤종열기자
전용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