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대란' 영세 수출업체 사장 눈물의 토로

"환율 오를수록 손실 눈덩이…회사문 닫을판"
매달 벌금내는 기분…3개월새 1억이상 날려
7년째 거래 은행 강권에 어쩔수없이 가입
걱정할 필요 없다더니 해지 요구도 묵살
"일손 놓고 환율만 쳐다봐…비슷한 처지 수두룩"


'키코 대란' 영세 수출업체 사장 눈물의 토로 "환율 오를수록 손실 눈덩이…회사문 닫을판"매달 벌금내는 기분…3개월새 1억이상 날려7년째 거래 은행 강권에 어쩔수없이 가입걱정할 필요 없다더니 해지 요구도 묵살"일손 놓고 환율만 쳐다봐…비슷한 처지 수두룩" 홍준석 기자 jshong@sed.co.kr “매달 벌금 선고를 받는 기분입니다. 벌써 3개월간 키코 손실금으로 1억1,700만원을 날렸습니다. 환율이 오를수록 손실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거고…. 눈앞이 깜깜합니다.” 연 매출 1,000만달러 규모의 중소 철강수출업체인 ㈜케이텍의 김한흥 사장은 지난 23일 기자와 만나 주거래은행의 권유로 가입한 환헤지용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ㆍKnock-In, Knock-out)’로 인해 회사가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고 비통한 심경을 토로했다. 키코는 환율이 약정한 상ㆍ하단 범위에서 움직이면 환차익을 올릴 수 있지만 환율이 상한을 넘어서면 계약금액의 2~5배를 시장가격보다 낮은 환율로 팔아 손실을 입는 상품이다. 김 사장이 키코에 가입한 것은 2월20일. 7년째 거래를 하고 있는 A은행 담당 차장의 강한 권유에 어쩔 수 없이 가입했다고 한다. “선물환 거래는 원시적 방법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좋은 상품이 나왔으니 한번 가입해달라고 졸랐습니다. 마치 보험상품 강매하듯이요. 특히 2년간 환율이 970원 이상 오른 적이 없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상품 구조는 ‘녹인(Knock-In)’ 환율 980원, ‘녹아웃(Knock-out)’ 환율 910원, 행사가격 950원50전으로 만기 1년(매달 1번씩 정산), 계약금 풋옵션 월 30만달러, 콜옵션 월 60만달러였다. 약정환율이나 계약금ㆍ만기조건 모두 은행에서 정해준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일주일가량 지나 신정부 경제방향 등 주변에 환율상승 요인이 산재해 있다고 판단, 손실 보기 전에 해지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김 사장은 한탄했다. “2월 말이면 경상수지 적자 등 사실상 은행에서는 환율상승 예견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위험에 대한 경고는 전혀 없고 문제 발생 전에 해지 요구도 거부했습니다. 7년 거래 은행이 선량한 고객에게 칼을 꽂은 셈이지요.”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계약 한달 뒤인 3월20일 환율이 1,004원50전으로 급등하면서 달러당 54원(1,004원50전-950원50전) 손해가 났다. 3,300만원을 은행에 고스란히 바쳐야 했다. 4월에는 2,700만원으로 줄었지만 5월에는 환율이 1,040원대로 폭등하면서 5,700만원이나 납부해야 했다. 3개월간 파생상품 손실금만도 무려 1억1,700만원에 이른 것이다. 더욱이 환율상승 가능성이 높아 총 손실금이 10억원대까지 달할 수 있다고 김 사장은 크게 걱정했다. 지금은 되는대로 돈을 끌어 모으고 있지만 벌써 자금압박에 시달린다면서 사무실 등을 팔 것이라고 말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해외에 나가 일해야 하는 사람이 환율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밤에 잠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뉴욕 주식시장은 어떤지, 유가는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기 일쑤입니다. 특히 정부 당국자가 환율상승 시사 발언을 하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몸도 마음도 지친 까닭에 얼마 전 받은 정기검진에서는 공황장애 증상과 위염이 생겼고 혈압도 150 이상 급상승했다고 한다. “담당의가 2개월 만에 몸이 이렇게 망가졌냐며 의아하게 쳐다보기까지 하더군요.” 이 같은 사정은 동석했던 연 매출 700만달러 규모의 중소 섬유수출업체인 M사의 K모 사장도 마찬가지. 주거래은행과의 관계 때문에 익명을 요구한 K사장은 3월 초 키코(계약금 20만달러)에 가입, 4월 2,400만원, 5월 4,800만원의 손실금을 은행에 냈다. 그는 “환율상승기인 3월에 어떻게 이 상품을 권유할 수 있냐”면서 “키코 때문에 문 닫기 일보 직전인 영세 수출업체가 주위에도 20여곳 정도 된다”고 밝혔다. 그는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여동생도 키코 손실금을 내기 위해 며칠 전 2,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다면서 여동생은 살고 있는 집도 자금마련을 위해 내놓은 상태라고 눈물을 훔쳤다. 이처럼 벼랑 끝에 몰린 두 업체 사장은 결국 은행 측에 하소연했지만 “환율이 이렇게 뛸 줄은 몰랐다. 하지만 계약서에 사인한 건 당신들이니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대답만 들었다고 한다. 현재 두 사람 모두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가 개입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법적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키코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한강에 투신할 사람들도 나올 것이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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