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별기획/첨단기술을 지켜라] 돈이 줄줄 샌다 유출액 기하급수적…작년에만 35兆IT서 제조업까지 中·카자흐등으로 전방위 유출한건만 빠져나가도 산업 전반 치명적 타격 초래국가차원법·제도적 장치 마련 적극대응 나서야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은 첨단 과학기술의 개발 및 활용 여부에 좌우된다. 연구개발(R&D)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기술개발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기업이건 경쟁업체의 첨단 기술을 빼내려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이 큰 돈 들이지 않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애써 개발한 기술이 밖으로 빠져나가면 경쟁구도는 확연히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엄청난 자금을 쏟아넣어 기술을 개발한 업체는 그 기술을 거의 공짜로 확보한 기업을 당해낼 수 없다. 원가면에서 경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가 테러와 첨단 기술 유출 방지를 중요한 보안 목표로 삼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기술개발 못지않게 기술을 지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 우리의 알토란 같은 기술이 어떻게 외국으로 유출되고 있고, 대응책은 무엇인지를 시리즈로 점검해본다. 중국 최대 가전업체 하이얼의 전시장의 보안은 철저하다. 사진기는 물론 카메라폰 조차 들고 가지 못한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디자인과 기능이 국내 제품과 흡사하다. 하이얼은 극구 부인하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 제품을 모방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LG전자도 모르게 디자인과 기술이 새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 무대에서 기술이 한 번 빠져나가면 해당 제품의 생산을 아예 중단해야 할 정도의 파괴력을 몰고 온다. 하지만 기술유출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대응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기술유출을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한 데다 기업조차 이미지 손상을 우려해 조용히 넘어가려는 소극적 자세로 일관한다. 오경수 롯데정보통신 대표는 “한 건의 기술 유출로 힘들게 키워온 산업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며 “한 순간의 판단 착오가 나와 기업은 물론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갈수록 늘어나는 첨단 기술 유출=올 3월 삼성전자 선임연구원이 카자흐스탄으로 첨단 휴대폰 기술을 유출하려다 적발됐다. 연봉 3억원에 기술 컨설팅 대가 200만달러(약 20억원)와 핵심인력 스카우트 비용 450만달러(약 45억원)의 유혹 때문이었다. 이 연구원은 사내프로그램으로 최신형 휴대폰 회로도와 배치도를 내려 받고 출력까지 했다. 중국이나 대만이 아닌 카자흐스탄으로까지 기술유출 범위가 확대될 정도로 우리의 기술을 빼내려는 시도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기술유출은 정보기술(IT)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현대차는 내부 감사를 통해 아반떼 XD의 엔진과 강판 등의 내구성을 시험한 결과를 유출하려던 시도를 차단했다. 올 6월에도 중국 장화이(江淮ㆍJAC)차의 짝퉁 싼타페 개발 및 생산 사실을 확인하고 대책을 마련중이다. 국내 산업기술이 해외로 불법 유출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해외 기술유출 적발 건수는 2002년 5건에 불과했으나 2004년 26건으로 급증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29건에 달했다. 피해추정액도 2002년 200억원에 불과했으나 ▦2003년 13조9,000억원▦2004년 32조9,000억원 ▦2005년 35조5,000억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한 순간의 방심으로 경쟁력 무너질 수도=지난해 한해동안 기술유출로 발생한 국내기업 피해액은 35조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삼성전자ㆍSK텔레콤ㆍLG전자ㆍ하이닉스반도체 등 대표적인 국내 IT기업들의 지난해 영업이익 13조578억원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기술유출은 경쟁력의 붕괴를 가져온다. 만약 삼성전자의 휴대폰 기술이 그대로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갔다면 애니콜 신화는 의외의 복병을 만날 수도 있었다. 기술을 빼내가는 입장에서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기술개발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원천기술을 가진 기업보다 더 싼 가격에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 실제 2004년 5월 적발된 홍콩 Q사의 휴대폰 R&D 인력 스카우트 비용은 11억6,000만원이었다. 반면 이들이 가져간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스카우트 비용의 20배가 넘는 250억원이 투입됐다. 박종남 대한상공회의소 조사2본부장은 “공개된 기술유출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기술유출은 기업은 물론 국가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범죄”라고 지적했다. ◇철저한 산업보안체제 필요=해외공장 건설이나 매각은 합법적인 기술유출 통로로 활용된다. 하이닉스반도체의 LCD 공장을 인수한 BOD는 10년의 기술장벽을 훌쩍 뛰어넘어 5세대를 생산하며 국내 LCD업계를 긴장시켰다. LG전자 난징디스플레이 단지의 경우도 난징시 정부가 디지털TV를 개발하겠다고 나서자 혹시 있을지도 모를 기술유출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김익수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 세우는 첨단공장은 자칫 기술격차를 따라 잡는 중국의 공격캠프가 될 수도 있는 만큼 기술유출에 대한 각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기업유출에 대한 정부나 기업들의 대응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기업의 20.5%가 회사 기밀정보의 외부 유출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기밀유출 사실을 알고도 절반 가량의 기업은 쉬쉬하고 넘어간다. 주가와 기업 이미지 때문에 속앓이만 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경제스파이법을 통해 기술유출을 차단하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국가적인 차원에서 기술유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시영 삼성전자 총괄 보안그룹장(상무)은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바이오메트릭 인증시스템이나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엄정한 보안정책 운용을 위한 법적 기반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대기업 이중삼중 보안 연구원은 GPS 부착…건물입구엔 X선 투시기… "연구원A 현재 위치 파악중… B1 21구역(지하 1층 식당)"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연구소 연구원들의 신분증에는 색다른 기능이 하나 더 추가돼 있다. 위성추적장치(GPS)가 부착돼 출입문에 접근하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불이 꺼진 빈 사무실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불이 켜진다. 냉난방 시스템도 자동으로 작동된다.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신분증 뒤에 달린 조그만 단추를 눌러 구조 요청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연구원들의 위치를 연구소내에서는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삼성전자로서는 첨단 기술 유출을 막아보려는 고육지책이다. LG전자 DD사업부 연구원 B씨는 지난달 참가했던 기술세미나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대만TV업체의 연구원을 만났지만 인사만 하고 발길을 돌렸다. 길게 대화하다가 LCD TV 기술이나 제품 전략 등에 대한 얘기가 무심코 나올 경우 기술 유출의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들의 입단속과 문단속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 웬만한 창으로는 뚫기 어렵도로 방패를 이중 삼중으로 쌓아 놓겠다는 것이다. 대기업 임직원들은 기술과 관련된 대화가 나오면 자리를 뜨라는 보안행동요령을 지킨다. 입단속과 함께 도청에 대한 대비도 철저하다. 삼성본관의 경우 회의실과 임원실 등에 외부 도청을 막는 장치를 설치했다. 휴대전화 등 첨단 핵심 기술 유출 사고가 잇따르면서 문단속도 강화되고 있다. LG전자ㆍLG필립스LCDㆍLG이노텍 등 LG그룹의 전자계열 3인방이 입주한 여의도 트윈타워 서관 건물 1층에는 X선 투시기, 전기도난방지시스템(EAS), 스피드게이트 등 첨단 보안검색 장비가 설치돼 있다. 서관 출입구 2곳에 1대씩 배치된 X선 투시기는 '반ㆍ출입 금지품'인 노트북컴퓨터, USB메모리 등을 사전에 걸러낸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지난해부터 R&D팀 등 주요 부서의 서류나 문서를 암호화해 일반인들이 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또 임직원들이 출근할 때 보안대를 통과하면서 카메라폰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는 렌즈를 스티커로 봉인하도록 한다. 사업장 보안도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 출입하려면 몇 번의 검문과 확인을 받아야 한다. 미리 예고되지 않은 차량은 아예 출입조차 힘들다. 반도체와 LCD 라인은 철저하게 통제된다. 외부 VIP라 하더라도 관람용 유리창을 통해서만 생산라인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촬영은 꿈도 꾸지 못한다. R&D와 관련된 건물에서는 카메라의 휴대는 물론이고 휴대폰의 카메라는 작동이 되지 않게끔 방어막을 구축했다. 대기업들은 기술유출 방지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지만 아직도 중소기업은 비용 문제로 방패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유출을 막기위한 시스템은 미래에 대한 투자인 만큼 CEO들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보안시스템을 갖췄다 하더라도 끊임없는 보안진단과 교육 등 사후관리가 동반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순동 LG전자 보안그룹장(부장)은 "기업의 정보보안은 회사의 기업비밀 및 정보자산이 경쟁기업에 공개 또는 유출이 되지 않도록 하는 유ㆍ무형의 예방조치"라며 "정보보안은 기업의 리스트관리 측면에서 미래에 대한 투자로 인식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정구영차장·이병관·김현수·한영일·이현호·손철·최광기자 gychung@sed.co.kr 입력시간 : 2006/07/31 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