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회장이 삼성자동차 채무해소를 위해 내놓은 삼성생명 주식을 담보로 채권단이 자산담보부증권(ABS)을 발행, 채권을 회수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이는 정부가 삼성생명 상장을 당분간 유보하기로 결정, 삼성자동차 처리가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이 회사의 채무관계를 신속하게 정리함으로써 제3자 인수 등의 물꼬를 트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ABS 발행이 성사되면 최대 채권자인 서울보증보험도 유동성을 확보함으로써 급한 불은 끄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채권단이 ABS를 발행하더라도 삼성이 당초 주장했던 2조8,000억원(주당 70만원)을 조달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다른 대안이 없다=정부 당국자는 6일 『삼성생명 상장이 유보된 만큼 채권단이 맡아 놓은 주식 400만주를 어떻게 처리할 지가 관건이 됐다』며 『ABS 발행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매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상황을 봐가며 결정해야겠지만 단계적으로 ABS를 발행하면서 일부는 장외거래를 통해 매각하는 방식을 병행한다면 비교적 이른 시일안에 삼성자동차 부채정리가 끝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해춘(朴海春) 서울보증보험 사장도 『2조원에 이르는 삼성자동차 지급보증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ABS 발행을 비롯한 다각적인 방안을 추진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밝혔다.
朴사장은 그러나 『올해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삼성자동차 회사채 4,000억원에 대해서는 삼성그룹이 계열사를 통해 삼성생명 주식을 주당 70만원에 인수함으로써 갚아주어야 한다는 요구에는 변화가 없다』고 덧붙였다.
◇삼성 계열사 인수도 가능=정부와 일부 채권단이 ABS 발행을 검토하기로 한 것은 삼성생명 상장이 보류된 이상, 주당 가격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실무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ABS로 시장에 내놓은 뒤 투자자들에게 가격결정을 맡기겠다는 발상이다. ABS 투자자들은 언젠가는 상장이 허용될 삼성생명의 자산가치를 믿고 이를 사들이게 된다. ★그림참조
금융기관들이 ABS 발행을 위해 내놓는 자산은 대출채권이나 외상매출금·부동산 저당채권 등이 일반적이지만, 삼성생명 주식이 충분한 안정성과 수익성을 가진 우량자산이기 때문에 ABS 발행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그러나 내심으론 삼성이 계열사를 통해 ABS를 대거 매입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계열사에 삼성생명 주식을 떠안겨 논란을 빚느니, 차라리 포장을 바꿔 인수하도록 함으로써 일석이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삼성생명 주식을 인수할 경우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 금지조항에 위배될 소지가 있는데다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무사히 지나치기 어려운 실정이다.
◇부족분은 삼성이 메꿔야=정부와 채권단은 그러나 ABS 발행을 통해 거둬들인 금액이 삼성이 공언했던 2조8,000억원에 못미친다면 부족분을 삼성이 메꿔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출자로 살려낸 서울보증보험이 삼성자동차에 대한 채권을 전액 회수하지 못한다면 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가게 되므로 삼성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ABS 발행을 위한 실무작업에도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단은 삼성이 서울보증보험에 돌아오는 삼성자동차 회사채를 대신 갚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삼성은 기아나 한보 등과는 달리 충분한 여력을 갖고 있는 만큼 결자해지의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상복 기자 SBHA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