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순간들] <7> 한국타이어 "중화시장을 점령하라"

"국내시장 한계" 진출 4년만에 흑자
"어려울수록 투자 확대" IMF 불구 강공 전략
자금조달·中규제등 난관 이겨내며 정상 올라
세계적 업체 치열한 경쟁뚫고 고속성장 지속



한국타이어는 남보다 한발 앞선 현지 맞춤형 제품으로 중국시장을 공략하는데 성공했다. 후진타오(오른쪽 두번째)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04년 한국타이어 현지공장을 찾아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선택의 순간들] 한국타이어 "중화시장을 점령하라" "국내시장 한계" 진출 4년만에 흑자"어려울수록 투자 확대" IMF 불구 강공 전략자금조달·中규제등 난관 이겨내며 정상 올라세계적 업체 치열한 경쟁뚫고 고속성장 지속 민병권 기자 newsroom@sed.co.kr 한국타이어는 남보다 한발 앞선 현지 맞춤형 제품으로 중국시장을 공략하는데 성공했다. 후진타오(오른쪽 두번째)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04년 한국타이어 현지공장을 찾아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국내 타이어시장은 이제 성장 한계점에 도달했다. 새로운 도약의 전기가 필요하다.” 외환위기의 짙은 먹구름이 국내 산업계를 강타했던 지난 98년 봄. 서울 역삼동 한국타이어 본사에선 조충환 사장을 필두로 핵심 경영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조 사장은 이 자리에서 벽에 부딪힌 타이어 사업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 중국사업을 과감하게 키우자는 주장을 펼쳤다. 그가 계획했던 중국 투자규모는 2억5,000만 달러(약 3,000억원). 당시 외환위기 여파로 유동성 고갈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사소한 경비 지출마저 꺼리는 상황에서 오히려 투자를 늘리는 정반대의 전략을 선택하자는 주장이었다. 반면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상당수의 임원들은 “지금은 기업들이 기존 사업도 접는 마당에 신규 사업은 위험하다”며 반대했다. 특히 일부 임원들은 “중국시장에는 이미 미쉐린과 굿이어, 브리지스톤의 3대 타이어가 포진해 있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어렵다”는 현지 시장 정황까지 들이대며 ‘위험한 선택’이라고 강한 톤으로 지적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기업 진화론’. 조 사장은 임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줄거리의 이야기를 했다. “생물 진화의 역사를 보자. 외부환경의 시련이 닥칠수록 오히려 강하게 자란다. 지금은 경제계 전체가 시련기를 겪고 있지만 해외사업 기반을 잘 갖춘 기업에게는 도리어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 타이어 시장은 자동차 보급 속도만큼이나 고성장이 예상되는 곳이다. 여기를 포기하고 한국타이어의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고개를 갸웃하는 임원들의 반발을 반은 설득하고, 반은 강요해서 어렵사리 중국투자 확대를 결정했다. 한국타이어는 그 해 11월 중국 저장성 지아싱시와 장쑤성 후이인시에 생산기지 1단계 설립공사를 마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중국본부장으로는 조 사장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한영길 부사장(현 중국본부 사장)을 임명했다. “이 과정에서 자금조달을 위해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워낙 자금사정이 빡빡한 탓에 투자자금을 마련하느라 백방을 뛰어다녀야 했다. 게다가 중국 정부의 까다로운 규제와 진입장벽을 피해 현지 정부를 설득하는 일도 힘겨웠다.” 한영길 사장의 후일담이다. 중국 투자를 구체화시켰지만 곧바로 시련이 닥쳐왔다. 중국 공장은 설립 이후 2000년까지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고, 생산효율성 차원에서 노후화된 국내의 영등포ㆍ인천공장을 순차적으로 폐쇄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느냐’는 식의 냉소와 질타가 여러 통로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전달되기도 했다. 한 사장은 “주변에선 이상한 판단이라고 바라봤지만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중국 생산공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다”며 “설립 당시 연산 425만개 수준이던 타이어 생산능력을 2002년에는 1,130만개로 늘렸다”고 회고했다. 현지시장을 뚫기 위한 마케팅활동도 눈물겹다. 의심 많고, 자존심 센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설득작업을 펼쳤다. 중국 생산법인이 흑자로 돌아선 것은 2001년. 가동 4년만인 2003년에는 현지 승용차 타이어 시장점유율 1위로 차지했다. 지난해 매출액 5억6,000만 달러, 영업이익 7,800만 달러를 달성했다. 한 사장은 “중국의 승용차용 타이어시장 성장률은 지난 2001년 이후 연평균 23.6%씩 급팽창하고 있다”며 “현재 중국의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4대당 한대는 한국타이어 제품”이라고 자랑했다. 8년전의 ‘무리수’가 멋들어지게 먹힌 셈이다. 만약 98년 조충환 사장의 ‘강공전략’이 관철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당시 중국 생산기지 투자결정이 1~2년만 늦어졌어도 한국타이어의 급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중국 자동차시장이 99년을 기점으로 급성장하면서 글로벌 업체들의 현지 투자경쟁이 불붙었기 때문이다. 브리지스톤의 경우 2000년 금호타이어 텐진공장을 인수했고, 미쉐린도 2001년 상하이타이어라는 중국 기업의 승용차용 타이어부문을 인수했다. 이밖에 굿이어, 콘티넨탈 등 쟁쟁한 기업들이 현지 생산기반 마련 및 확대에 나서면서 현재 세계 10대 타이어업체가 하나같이 중국에 생산기반을 갖추고 있다. 송영기 한국타이어공업협회 이사는 “세계적인 타이어 제조사들이 중국시장에서 군웅할거하면서 전국시대를 연상하게 만들고 있다”며 “한국타이어가 이 같은 경쟁의 틈바구니를 뚫고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경쟁사보다 한 박자 빠른 과감한 투자결정을 내려 현지 선발업체로서의 프리미엄을 확보한 데 있다”고 분석했다. "현지 맞춤형 상품 경쟁사보다 빨리" 중국내 연구소·시험 주행장등 완비…신차·도로환경 맞는 제품개발 총력 "중국에선 이제 생산능력을 키우는 것만으로 경쟁사를 제압할 수 없습니다. 철저히 현지화한 맞춤형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제품개발능력을 갖추는 것이 새로운 승부수가 됐습니다."(한영길 한국타이어 중국본부 사장) 한국타이어의 중국사업이 진화하고 있다. 현지 최고 수준의 타이어 제조사에서 한 계단 올라서 정상급 타이어 개발업체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타이어는 지난 5월 중국 저장성 지아싱시에서 진화의 첫 발을 내딛었다. 현지 생산공장 인근에 부지면적 1만3,000여평에 달하는 연구소를 완공하고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지아싱 연구소는 현재 90여명의 고급 두뇌와 질량분석기, 타이어 주행시험기와 같은 고가의 첨단 장비들을 갖추고 신제품ㆍ신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미 국내에 대규모 연구소를 갖춘 한국타이어가 또 다시 중국에 연구개발 투자를 단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중국의 도로 조건이 우리나라나 선진국보다 훨씬 열악하기 때문이다. 한 사장은 "중국은 도로 포장상태가 나쁜데다가 지역별로 기후 조건도 천차만별이어서 일반적인 제품보다 높은 내구성을 갖춘 제품 개발이 필요하다" 한국타이어는 이미 섭씨 53도 이상의 고열에서도 견딜 수 있는 '사막용 타이어'를 개발해 중동시장을 장악해갔던 경험과 기술력을 축적해놓은 상태다. 따라서 중국의 도로환경에서 최적의 성능을 낼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제품 개발 속도. 한국타이어는 베이징현대와 일기폭스바겐과 상하이GM, 난징 피아트 등 중국의 30여개 자동차제조사에 새 차 장착(OE)용 타이어를 공급하고 있어 방대한 차종이 현지에 출시될 때마다 그에 맞는 타이어를 적기에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회사 연구개발센터 OE개발팀의 박진선 부총공정사(副總工程師)는 "OE용(새 차 장착용) 타이어 시장에서의 성패는 고객 자동차회사의 구미에 맞는 현지 맞춤형 타이어를 경쟁사보다 빨리 개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중국 연구소 건립으로 한국타이어의 개발스피드는 한층 향상됐다"고 밝혔다. 한국타이어는 연구소에 이어 무려 100만평에 달하는 타이어시험주행장을 중국에 건립하겠다는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중국에서 신제품을 빠르게 개발해도 현지 테스트 시설이 없어 매번 한국으로 제품을 공수해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따라서 중국에 시험주행장이 생기게 되면 이 같은 시간낭비를 한층 줄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한국타이어의 중국 사업 비전은 현지에서 제품의 개발과 테스트, 제조, 판매를 한번에 처리할 수 있는 일괄체제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이 같은 청사진이 실현되면 중국내에서의 1위 자리는 더욱 확고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입력시간 : 2006/09/24 16:02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