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서 부활한 안중근… 중국에 애국의 감동 주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5주기 기념
뮤지컬 '영웅' 현지서 특별공연
"조국 위한 희생정신에 가슴 뭉클"
객석 메운 中관객들 갈채 쏟아져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 하얼빈역. 차가운 바람을 가르고 매서운 7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총알은 한국 침략에 앞장선 일본 정치인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을 붉은 피로 물들였다. "코레야 우라(대한민국 만세)." 절규 같은 외침의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31세 청년 안중근이었다. 민족을 대신해 방아쇠를 당긴 청년은 사형 선고를 받고 이듬해 3월 26일 조국의 독립을 외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105년이 지난 2015년 2월, '그 날의 그 순간'이 재현됐다. 다른 곳도 아닌, 역사 속 현장인 중국 하얼빈에서.

광복 70주년, 안 의사 순국 105주기, 하얼빈시 안중근 기념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지난 7~8일 중국 하얼빈의 최대 규모 공연장인 환구극장에선 안중근 의거를 그린 뮤지컬 '영웅'의 특별공연이 펼쳐졌다. 무대에서 부활한 안중근과 1909년 의거 당시의 뜨거운 총성은 영하 20도 눈발 날리는 날씨에도 1,600석의 객석을 채운 관객의 가슴을 감동으로 적시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안 의사가 의거 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순간 환호 섞인 박수를 보내다가도 안 의사의 최후를 그린 장면에선 숨을 죽인 채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지난 2009년 초연한 영웅은 안 의사의 거사 계획부터 저격, 재판, 사형집행에 이르는 과정을 박진감 넘치게 그렸다. 하얼빈 역으로 향하는 기차의 기적 소리와 뒤이은 7발의 총성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소재가 갖는 무게감을 제대로 살려냈다. 안 의사가 일본 법정에서 명성황후 시해와 을사늑약 강제 체결 등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5가지 이유를 대며 '누가 죄인인가'를 묻는 장면에선 갈채가 쏟아졌다. 배우들의 묵직한 감정 연기가 극의 중심을 잡은 가운데, 대한민국 의병과 일본 순사들의 추격전은 감각적인 안무를 만나 한층 역동적인 장면을 연출했고, 대형 기차 세트는 샤막(반투명 가림막)과 그 위에 투사된 영상의 결합으로 입체감과 속도감을 극대화했다. 제작사인 에이콤은 작품의 감동을 제대로 선사하기 위해 이틀 공연에도 불구하고 100명에 가까운 제작진(배우 포함)과 컨테이너 5개 분량의 장비를 투입했다. 이란영 안무감독은 "한국 창작 뮤지컬이 외국에서 온전한 틀을 갖춰 공연하기는 쉽지 않다"며 "그런 점에서 이번 하얼빈 공연은 중국 관객과 한국 뮤지컬의 진정한 첫 만남"이라고 강조했다. 외국의 영웅을 외국어로 그린 작품이었지만, 객석을 채운 중국인 관객들은 높은 몰입도를 보였다.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 야욕으로 한국 못지않은 핍박의 상처를 지닌 그들이기 때문이다. 제작사는 이에 일부 장면을 중국어로 진행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8세 초등학생 딸과 공연장을 찾은 중국인 테엔위빈(42)씨는 "안중근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사실 어떤 인물인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었다"며 "뮤지컬을 통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분인지 알게 됐고, 중국 역시 일본의 침략으로 복잡한 상황에 부닥쳤었기에 더 많이 공감하며 관람했다"고 말했다. 이미 안 의사를 알고 있다는 장 줘어(59)씨도 "조국을 위해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한 안 의사의 모습을 보며 더 큰 존경심이 생긴다"고 전했다.

중국 하얼빈시의 초청으로 이뤄진 이번 공연은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안 의사의 의거 장소인 하얼빈에서 펼쳐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영웅의 연출을 맡은 윤호진 에이콤 대표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역사의 현장에서 영웅을 공연하게 됐다는 것이 감격스럽다"며 "'독립운동하는 정신으로 공연을 만들자'는 다짐 속에 이렇게 마법 같은 결과를 얻게 돼 뿌듯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거대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에서 한국 창작 뮤지컬의 가능성을 엿봤다는 점도 큰 수확이다. 윤 대표는 "이번 하얼빈 공연을 계기로 '영웅' 중국어 버전(라이선스)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며 "이와 별개로 중국을 소재로 한 현지 제작 뮤지컬도 조만간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류싱밍 하얼빈시 부비서장은 "영웅은 예술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훌륭한 작품"이라며 "하얼빈은 원래 음악을 중시하는 도시로, 이번 공연을 통해 한중 교류를 촉진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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