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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 35㎝, 무게 2.8㎏에 불과한 유진로봇의 청소로봇 '아이클레보'는 첨단 기계 기술과 정보기술(IT) 융합의 총아다. 공간을 분석하며 스스로 이물질을 인식하는 카메라 네비게이션 맵핑 기술과 추락방지 센싱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유진로봇은 세계 3대 서비스로봇 기업 지위를 넘보고 있다.
성장 정체기에 빠진 국내 제조업이 서비스업, 정보통신산업 등과의 융합을 통해 재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 경제 성장의 주축이었던 기존 주력 산업의 성장성이 크게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경제 사회 패러다임에 부응할 수 있는 신성장 산업의 출현마저 지연되면서 이종산업간 융합에서 새로운 성장전략을 모색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발표한 '2012년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업의 평균 매출액 증가율은 15.8%에서 4%로 급감했다. 국가간, 기업간 기술격차가 좁혀지면서 제품 중심의 고품질 전략으로는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 또 제조업 성장성 둔화와 더불어 1990년대 후반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IT 산업의 성장세마저 더뎌지면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제조업의 성장 둔화, 경쟁 심화, 미래 선도산업 부재라는 삼중고에 직면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개별 기업들의 융합산업 진출은 활발하다. 특히 자동차, 조선 등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전통적 제조산업군에서도 다양한 제조융합 전략이 추진돼 결실을 맺고 있다.
세계 최초로 스마트선박을 선보이며 조선산업에서 IT융합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이 대표적이다. 현대중공업은 2011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선박네트워크(SAN)를 공동으로 개발했다. SAN을 탑재한 스마트선박은 엔진과 제어기, 각종 기관 등의 운항정보를 위성으로 모니터링하고 선박 내 통합 시스템을 원격 진단ㆍ제어할 수 있는 차세대 선박으로 주목을 받았다. 개발 후 1년도 안 된 시점에 110척의 수주성과를 올렸다.
항공분야에서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이 국산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고등훈련기 T-50 16대를 인도네시아에 수출한 것이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전까지 국내 항공 제조사들은 미국 등 해외 선진국에서 소프트웨어를 들여왔지만 정부 차원에서 항공기 운영 소프트웨어 국산화를 추진하면서 항공-IT 융합기술이 결실을 맺었다.
성장 정체에 빠진 제조업과 IT산업의 융합을 적극 지원해 신시장을 창출하고자 하는 각국 정부의 정책 추진도 활발하다. 선진국에서도 융합 신산업을 미래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인식하고 융합기술개발과 육성을 위한 신산업정책을 강화, 산업융합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은 2006년 국가경쟁력강화계획(ACI)을 통해 융합분야를 중심으로 연구개발 확대, 기술혁신, 세제혜택 등을 강화하고 있다. EU는 2007년부터 올해까지 총 533억 유로를 바이오, 에너지 등 융합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신산업육성을 위한 융합정책 추진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자동차, 로봇, 에너지 등과 IT를 결합한 6대 중점분야를, 중국에서는 고성능 장비제조, 신에너지 자동차 등 7대 전략적 신흥산업을 제시하고 IT융합 기반의 산업 고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1년 산업융합촉진법을 시행한데 이어 지난해 8월 '제1차 산업융합발전 기본 계획'을 마련하고 핵심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IT융합 분야의 생산규모는 2007년 38조7,000억원에서 2011년 49조7,000억원으로 확대됐고 매년 두자릿수 이상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융합기술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뒤처져 있고 산업융합에 대한 비전, 전략, 추진체계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융합기술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과 비교할 때 약 50~80%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조융합 성장의 반대급부로 뿌리가 흔들릴 수 있는 전통적 제조업 부문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전장치 마련 없이 융합산업 육성만으로 신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장밋빛 전망은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또 부처간 칸막이를 없애 산업과 문화, 과학기술이 융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다.
이와 관련, 한 바이오융합 분야의 기업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바이오 융합 분야를 주요 육성 과제로 선정해놓고 실제 제품 상용화를 위해 인증 절차를 밟으려고 기준 자체가 없어 차일 피일 시간만 낭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융합산업을 본격적으로 키우려면 정부에서 정한 핵심 분야만이라도 패스트트랙으로 인증, 판로 개척 등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