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육상 중거리 스타 이진일(32) 대표팀 코치가 예전의 대표팀 룸메이트이자 학교 후배 이재훈(28.고양시청)을 통해 올림픽에 맺힌 한(恨)을 풀 뻔 했으나 불과 0.3초 차로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26일(이하 한국시간) 아테네올림픽 육상 남자 800m 예선 1조에서 뛴 이재훈은자신의 기록(1분46초67)을 깨뜨리며 1분46초24에 골인해 조 3위를 차지했다.
이진일 코치는 조 2위까지 준결승 진출 티켓이 배분된 뒤 남은 6장의 티켓에 기대를 걸고 다른 조 선수들까지 기록을 따져봤으나 자비르 사이드(알제리.1분45초94)에 0.3초 뒤져 티켓을 놓치자 땅을 쳤다.
이 코치는 "재훈이가 아테네에서 내 몫까지 뛰어줬다. 희망을 발견했다"고 애써위안하면서도 안타까움이 진하게 묻어난 목소리였다.
아시안게임 2연패에 빛나는 스타 출신의 이 코치는 후배 이재훈의 역주를 보며8년전 생각을 문득 떠올렸다.
한국 육상에서 지금까지 유일한 아시아 기록으로 남아있는 800m 기록(1분44초14)을 보유한 이 코치는 전성기에 맞은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한국 트랙의 신기원을 열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무심코 먹은 감기약 때문에 올림픽 한해 전 도핑 테스트에 걸려 올림픽 출전 꿈을 접었던 것.
대표팀에서 한방을 쓰며 고락을 함께 했던 이재훈이 대신 한을 풀어주는 듯 했지만 간발의 차로 이 코치의 한은 그대로 남았다.
이 코치는 그러나 "자신감을 되찾았다. 후배들이 이렇게만 해준다면 중거리에서다시 아시아 정상을 되찾고 세계 무대를 노크할 날도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 육상 중 트랙은 단 한번도 올림픽 무대에서 예선의 벽을 넘어본 적이 없다.
필드 종목에서는 남녀 높이뛰기와 남자 멀리뛰기에서 3번 결승에 올랐으나 트랙은 '탈꼴찌가 목표'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였다.
이재훈은 최하위권을 맴돌던 한국 트랙에 청량제같은 역주를 펼쳤다.
이 코치가 '밑져야 본전'이라며 힘을 실어준 대로 초반부터 스퍼트를 끊었고 자신보다 기록이 앞서는 선수를 3명이나 제쳐 냈다.
86년 김복주, 90년 김봉유의 아시안게임 우승과 이진일 코치의 90년대 활약으로16년 간 아시아에서 아성을 지켰던 한국 육상의 간판 종목 남자 800m는 이날 세계의 벽 앞에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아테네=연합뉴스) 특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