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영화 '비지터'

단조로운 삶에 활기 찾아준 낯선 두 방문객의 '두드림'


새로운 만남은 권태로운 삶에 단비가 되어준다. 예기치 않은 만남에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작은 변화가 일고,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진심으로 가슴에 품게 되기도 한다.

영화'비지터'(The Visitor)는 주위에 별 관심 없이 살아온 주인공에게 어느 날 낯선 이들이 찾아오는 것에서 시작된다. 코네티컷 어느 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월터 베일(리차드 젠킨스)의 삶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강의 계획서 날짜만 수정해 가며 20년째 똑같은 강의를 반복할 뿐이다. 어느 날 논문 발표를 위해 뉴욕으로 간 그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예기치 않게 불법 이민자'타렉'커플과 마주친다. 월터는 갈 곳 없는 이들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고 타렉은 감사의 뜻으로 젬베를 가르쳐 준다. 밝고 경쾌한 젬베의 두드림에 클래식만 듣던 노교수의 건조한 삶에도 활기가 곁들여진다. 타렉 커플이 월터의 마음에 낯선 방문객 이상으로 자리하기 시작할 때 즈음, 노교수와 타렉에게는 냉엄한 현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불법체류자였던 타렉은 지하철역에서 불심검문으로 체포되고 강제 추방 위기에 놓이게 된다. 컨퍼런스에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의 화합에 대해 논의하던 월터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미국 당국의 방침, 이론과 현실의 괴리 앞에 낙담하고 만다. 타렉과 그가 알려준 젬베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비로소 알게 된 노교수는 이들의 곁에서 힘이 되어 주기로 마음 먹는다.

영화는 월터가 두 낯선 이와 가까워지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냄과 동시에 자유주의를 표방하지만 이민자들에게 이중적 잣대를 적용하는 미국 사회의 모순을 담아내기도 한다. 인종을 넘어선 우정, 이를 통한 진정한 교감을 그리면서 이들 앞에 놓인 현실을 통해 미국 사회 이면을 과하지 않게 들춰낸다. 조용히 공감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게 이 영화의 미덕이다. 월터 교수를 연기한 리차드 젠킨스의 내면 연기는 극의 완성도를 더욱 높인다. 무미건조한 얼굴의 노교수가 젬베의 두드림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삶의 리듬을 얻고, 낯선 두 방문객을 통해 새로운 삶에 다시금 눈 뜨게 되는 감정 변화 추이를 울림 있는 연기로 구현해 낸다.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이 영화로 2009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8일 개봉.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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