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어제와 오늘] ②근본대책 없나

정부.지자체, 정책저항에 부담 '엉거주춤'
매년 100억 투입 불구 노숙자 늘어 딜레마

노숙자 대책은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두기쉽지 않고 일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특단의 처방도 없다는 것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가장 큰 고민이다. 1990년대말 외환위기 이래 정부가 매년 약 100억원의 관련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나 노숙자 수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거리 노숙자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과거 군사정권이 했듯이 부랑자를 강제수용하면 역풍이 너무 거셀 게 뻔하고 노숙자 복지 향상에 주력할 경우 노숙자가 거꾸로 늘어나는 `부작용'이 예견돼 정부. 자자체로서는 딜레마에 빠져있는 형국이다. 그나마 정부와 지자체의 노숙자 정책은 공식 통계에 포함된 거리 노숙자와 쉼터노숙자 위주로 강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월말 현재 거리 노숙자와 쉼터 노숙자 4천422명은 지난해 같은 달 4천366명에비해 수치상으로는 56명 줄었으나 2001년 1월 6천127명을 고비로 떨어진 뒤 2002년2월이후 지속적으로 4천명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7월말 현재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는 1천276명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노숙자 수가 가장 많았던 2001년 1월 632명의 2배에 달한다. 노숙자 통계를 정확하게 산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부나 지자체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당초 기대와는 정반대로 노숙자들이 쉼터나 자활센터의 문을 박차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서울지역 64곳의 노숙자 쉼터 가운데 10곳이 수요가 없다는 이유로 운영을 중단한 것도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다. 거리 노숙자 증가와 더불어 정부나 지자체가 안고 있는 또 다른 고민은 과거 이른바 `IMF형 노숙자'와는 달리 부랑자로 전락한 상당수의 거리 노숙자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있다. 지난 1월 서울역에서 발생한 노숙자 난동사태 직후 서울시가 강제보호 필요성을언급했다가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적이 있어 `무리수'를 두는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숙자 상당수가 사실상 부랑자와 크게 다르지 않고 각종 질환마저 앓고 있어별도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잘못 접근하면 인권침해 시비에 휘말릴 수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해 둘 경우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질 수 있어마음이 개운치 않은 기색이다. 서울시 노숙인대책팀 민화영 주임은 "과거에는 노숙인를 부랑인으로 분류해 강제 수용했으나 1986년 `형제복지원 감금 사건' 이후 정부는 강제수용을 포기했다"며"현재로서는 특별한 방법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복지부 손덕수 사무관은 "정부로서도 근본적인 노숙인 대책을 내놓고 싶지만 예산과 인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노숙인 이외에도 취약계층이 많은데 이들의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노숙자 문제가 금세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대해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정부 대책이 제도적 기반없이 근시안적으로 이뤄져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정부가 노숙자에 대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한 것도 올초 보건복지부가 `부랑인 및 노숙인 보호시설 설치.운영 규칙'을 개정한 것이 사실상 처음이다.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노숙자는 일시적 경제사정에 의한 경우가 대다수였으나이 규칙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거리를 방황하면서 시민에게 위해와 혐오감을 주는정신착란자, 알코올중독자, 걸인, 앵벌이, 불구폐질자 등'(1987년 보건사회부 훈령523호)으로 정의되는 부랑자와 같은 취급을 받아왔다. 복지부는 올초 뒤늦게 관련 규정을 바꾸면서 `생업수단의 유무'에 따라 부랑자와 노숙자를 구분했다. 자활의지가 있어 돈벌이를 하고 있으면 부랑자가 아닌 노숙자로 인정해 적절한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공교롭게도 노숙자에 대한 법적 근거를 처음 마련한 올해 노숙자업무를 지방이양사업으로 선정해 지방자치단체에 대부분 떠넘겼다. 미국의 경우 노숙자 문제를 1980년대 초반까지는 주정부에 맡겼다가 1987년 이른바 `맥킨니법(Mckinney Act)' 제정을 계기로 연방정부 차원에서 다루기로 한 것과는 대비되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노숙인 대책은 중앙정부에서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참여정부의 지방분권화 정책에 따라 지방으로 이양된 측면이있다"며 "노숙인들과 실제로 맞부닥치는 지자체가 업무를 맡은 만큼 효율성이 높아지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가 현장의 실태를 적극적으로 파악해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으라는 주문이지만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자체가 노숙자 문제를 민간단체에 의존한 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데다 지자체별로 접근방식이 다를 경우 사태가 더 복잡하게 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 강북구에서는 堉汰?쉼터가 한 곳도 운영되지 않고 있다. 구청은 이에 대해 노숙자를 모두 귀가조치하거나 부랑자 시설로 유도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있다. 7월말 현재 광주광역시와 충북에는 거리 노숙자가 단 한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난 복지부 통계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서울시 노숙인대책팀 신종한 팀장은 "정부든 지자체든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고싶지만 지속적인 상담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면서 "이는 복지선진국도 마찬가지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특별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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