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모리 전 일본 총리가 이달 말께 노무현 대통령을 방문,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친서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얼어붙은 한ㆍ일 관계가 이번 친서를 통해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11일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일본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고바야시 유타카 참의원은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각각 지난 8일과 10일 만나서 모리 전 총리의 친서를 전달했다.
이 친서에는 “한ㆍ일간 긴장이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다각적인 외교채널을 가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모리 전 총리가 이달 말께 노 대통령을 면담, 고이즈미 총리의 친서를 전달하겠다는 의사도 포함됐다. 모리 전 총리는 계파정치가 남아있는 일본 정계에서 큰 계보를 이끄는 인물로 고이즈미 현 총리도 그의 계보 출신이다.
일본이 이처럼 관계개선에 적극 나서는 것은 교과서 왜곡 등에 대해 한국과 중국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세고 굳게 믿고 있던 미국이 최근 일본의 유엔 진출에 대해 부정적으로 입장을 선회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고립’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고이즈미 총리가 전달할 친서가 과연 한국 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것인가에 달려 있다. 정가에서는 최근 고이즈미 총리와 모리 전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회동해 한ㆍ일 관계 개선을 위한 ‘3개항’에 합의, 이를 우리 정치권에 전달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3인은 이 자리에서 ▦한ㆍ일 정상회담 조속 추진 ▦일본 각료의 망언 자제 ▦망언한 각료 엄중 인사문책 등을 합의했다는 것. 그러나 여당과 야당의 당국자들은 외교관례를 들어 이런 사실을 공식 부인하고 있다.
윤덕민 외교연구원 교수는 이와 관련 “일본이 독도와 교과서 문제 등 현안에 대해 개선된 입장을 보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내각 단속 등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한국에 내줄 카드가 없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경제지원 등을 통해서 한국을 달랠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과거와는 경제가 성장한 한국의 특성을 고려할 때, 비현실적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고이즈미의 친서에는 정상회담을 통해 경색된 양국 관계를 풀고 양국의 중요 현안인 북핵 문제와 한ㆍ일 자유무역투자협정(FTA) 등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양국간의 갈등이 지속되면 결국 양국간 경제적인 교류가 줄어들어 관광객이 줄고 결국에는 투자와 금융 부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