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능력중심 사회의 장애물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지난해 인턴사원 55명을 선발하면서 이전 방식과는 전혀 다른 채용 전형을 도입했다. 캠코는 입사 지원서에 지원자의 이름과 생년월일·e메일만 쓰도록 하고 출신 학교와 학점, 어학 성적 등은 일절 기입하지 말도록 했다. 이른바 '스펙 초월 리크루팅'을 선보인 것이다. 캠코는 천편일률적인 스펙을 받지 않는 대신에 지원자들의 업무 역량을 파악하기 위해 지원서 접수와 동시에 네 가지 과제를 내줬다. 여기에는 △공공기관 직원의 자질 △한국사 국정교과서 찬반 입장 △캠코의 공매시스템인 '온비드'의 마케팅을 위한 기획서 작성 △업무 중 영업 관행에 대한 처리 방안 등이 포함됐다.

과제 평가 과정에는 입사 5년 차 이하 사원 160명이 투입됐다. 20~30대 직원들은 과제를 꼼꼼하게 평가해 자신들의 후배가 될 인턴을 선발했다.

이렇게 해서 선발한 결과는 어땠을까. 합격자 55명 가운데는 금융 공기업 업무와 관련이 있는 경제·경영학과는 물론이고 건축학과 산업디자인, 생명공학·원자력공학과 출신까지 다양한 전공자들이 두루 뽑혔다. 또 목원대와 인천대·청주대 등 지방대 출신들도 다수 포함됐다. 선발된 인턴들은 "만일 다른 회사와 같은 서류전형이 있었다면 우리는 뽑힐 수 없었을 것"이라며 "스펙 초월 전형 덕분에 모두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스펙초월 채용 확산에도 허점 많아

캠코의 사례처럼 최근 들어 채용 시장에 스펙 초월 전형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열린 채용이 가장 활발한 금융권에서는 금융위원회는 물론이고 산업은행과 주택금융공사·IBK기업은행 등 공기업에서는 스펙 대신 심층면접을 통한 채용에 나서고 있고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우리은행·하나은행 등 시중은행들도 여기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들 금융 공기업과 시중은행들에서는 어학 성적은 최저 기준 충족 여부만 확인하고 있다. 한국마사회와 원자력환경공단 등도 스펙이 아닌 직무능력 중심의 실무형 인재를 채용하기 위한 시스템을 이미 도입했다.

스펙 초월 채용 관행은 민간 기업에서도 활발하게 확산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2011년부터 채용설명회 행사장에서 지원자의 자기 PR를 하도록 한 뒤 합격한 지원자들의 서류전형을 면제하고 있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도 지난해부터 서류전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특정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판단되는 지원자는 실무면접과 임원면접의 기회를 주고 있다.

스펙 초월 채용은 신입사원의 이직률을 낮추는 데도 상당한 효과를 나타내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이처럼 스펙 초월 채용이 성과를 거두자 올해부터는 302개 공공기관에서도 열린 채용 인원을 더 늘릴 계획이고 공무원 채용 때도 학벌과 자격증을 따지지 않는 직무 능력 위주의 채용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처럼 열린 채용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능력중심 사회가 정착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스펙 초월 채용은 국내에 도입된 지 2년 정도에 불과해 개선해야 할 점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회사별로 채용 방식이 달라지면서 구직자들이 준비해야 할 사항이 더 늘어났다는 점이다. 실제로 같은 은행권 내에서도 면접 과정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위주로 질문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정치나 경제·사회 등 이슈를 중점적으로 물어보는 기업도 있어서 구직자들은 기업별로 따로따로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만큼 지원자들이 준비해야 할 게 많아지는 셈이다. 또 스펙 초월 채용의 경우 어학이나 자격증처럼 객관화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이 때문에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가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78%가 스펙 초월 채용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NCS 등 객관적 평가지표 보급 늘려야

정부가 열린 채용을 확산시키려고 하는 것은 틀에 박힌 스펙 대신에 회사 직무와 잘 맞는 인물을 선발함으로써 직접적으로는 구직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궁극적으로는 능력 중심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시험 방식을 보완해 직무 평가를 좀 더 객관화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런 면에서 최근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도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과 같은 평가도구를 더 확산시킬 필요성이 있다. csoh@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