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산업이자 최대 수출품의 하나인 반도체에 대한 상관관세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도체가격이 폭락,수출은 물론 경제전반에 큰 타격이 우려된다. 주종 품목인 256MD램의 경우 지난해 아시아 현물시장 가격이 원가 이하인 3.70달러까지 떨어져 반도체 업계가 위기감에 싸여 있다. 지난해 6월 유럽의 인피니온에 이어 11월에는 미국의 마이크론사가 우리나라 반도체를 상대로 상계관세 제소를 한 바 있다.
경쟁력이 떨어져 어려움에 처하면 보호주의에 의존하기 마련이지만 반도체 상계관세 제소는 명분과 설득력이 약해 보호주의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국내 반도체 업계가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있어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 상계관세 제소 업체의 주장이다. 구조조정 차원에서 이뤄진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채권단의 출자전환 등 채무조정이 보조금이라는 주장이다. 하이닉스에 대한 채무조정은 어디까지나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 차원에서 채권 금융기관과 해당기업이 상업적 판단에 따라 취한 자율적인 결정으로 정부의 개입에 의한 보조금지급 행위로 보는 것은 무리다. 채권단의 채무조정은 하이닉스반도체는 청산가치보다는 기업으로서 계속할 가치가 높다는 세계 유수 컨설팅사의 평가를 바탕으로 채권 금융기관들이 채권회수 극대화를 위해 취한 정당한 조치인 것이다.
IMF의 권고로 취해진 이 같은 일련의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 조치에 대해 보조금 시비를 거는 것은 경제주권 침해 소지도 있다. 뿐만 아니라 IT경기 침체와 세계 반도체 공급과잉에서 비롯된 반도체 산업의 어려움을 한국반도체 탓으로 돌리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중간재인 반도체에 대한 이 같은 경쟁 제한적인 보호주의 무드는 제소국의 역내 산업은 물론 세계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우리나라 반도체에 대한 상계관세 조사 및 예비판정결과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비판정이 제소업체의 손을 들어주게 될 경우 힘겹게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은 물론 국내 반도체산업과 수출이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정부와 해당업계는 위기의식을 갖고 상계관세 조사에서 불리한 상황에 몰리지 않도록 적극 대응해야 한다. 이번 반도체 상계관세 조사결과는 국내 반도체산업의 생사와도 직결되지만 외환위기이후 추진해 오고 있는 일련의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의 정당성은 물론 경제주권과도 관계가 있는 문제다. 반도체 상계관세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 정권교체기의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학인기자 leej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