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 화약고'가 폭발 직전에 놓인 듯하다. 이슬람국가(IS) 극단주의자들은 미국인 기자의 참수 동영상을 연이어 공개하며 이슬람에 대한 미국의 이라크 공습을 멈추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래도 미국은 강경한 입장을 취하며 추가 파병을 지시했다. 이보다 앞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두 달도 채 안되는 기간 동안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물론 이들 중 상당수는 죄 없는 어린 아이들이었다. 서방세력과 중동세력 양쪽 모두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
책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중동문제 전문기자로 꼽히는 영국 인디펜던트의 로버트 피스크가 기록한 '테러와의 전쟁' 10년에 대한 기록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2001년 9·11사태 이후 미국과 영국 정부 등이 주장한 것으로, 당시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은 "9·11 살인범들에 맞서 '십자군' 전쟁에 임해야 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부시 전 대통령의 표현은 맞아 떨어졌다. 과거 십자군들이 중동에서 행했던 잔인함은 800여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도 그대로 반복됐다. 책은 중동지역의 평범한 사람들이 겪어온 고통과 비극, 이를 야기한 서구의 거짓과 위선을 고발한다. 나아가 그로 인해 오늘날 우리 모두의 삶에 일상적으로 파고든 공포까지도 꼬집는다.
원제를 그대로 옮겨다 쓴 '전사의 시대'에서 전사(warrior)는 군인(soldier)와 구별돼 쓰인 단어다. 저자는 한 미국 퇴역군인에게 받은 편지 한 통에서 "부시 정부하에서 군의 복무 신조가 군인에서 전사로 바뀌고 있고, 그것이 미군들로 하여금 잔학행위를 저지르도록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고 믿고 있음을 확인했다. 살인과 구타,강간,항문 성폭행,모욕 등 중동에서의 미군이 저지른 잔혹행위는 너무 많이 알려져 이제는 둔감해질 정도다.
미 육군의 공식 복무 신조는 명예를 중시한다. '나는 미국의 군인이다…내가 입고 있는 제복과 부대와 조국의 명예를 더럽힐 만한 행동을 일절 하지 않을 것이다…나는 이 나라 국민들이 내가 대표하는 임무를 자랑스러워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중동의 미국 병사들은 "미합중국의 적들에 맞서 싸우고 말살시킬 태세를 갖춘" 전사들의 태도로 복무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전사는 명예보다 적들을 말살시킬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IS의 미국인 기자 참수 동영상은 유튜브 등을 동해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의 교도소에서 미군들이 이라크 포로들에게 자행한 강간과 소년 성폭행, 고문과 모욕을 보며 낄낄거리는 동영상은 미국하원의원들에게만 비밀리에 시청이 허가돼 있다. 주황색 운동복을 입은 관타나모 기지 수감자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중동을 피해자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아이들을 폭발로 숨지게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순교자'라 부르는 것 역시 싫고 지겹다"고 고백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주장하는 것 역시 잔인한 '십자군'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전장을 누빈 기록과 그를 바탕으로 한 사색이 담겨있기에 책에 대한 신뢰가 더한다. '타임스'에 근무하며 1976년 레바논 주재 특파원으로 처음 중동에 발을 디딘 그는 이후 루퍼트 머독이 '타임스'를 인수한 이후 1988년 미 해군의 이란항공 655 여객기 격추사건을 취재한 자신의 기사가 잘려나가는 수모를 겪자 회사를 박차고 나와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중동 특파원으로 1989년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취재 중에 분노한 난민들의 공격을 받아 피투성이가 되기도 했고 바로 옆에서 포탄이 터져 청각장애까지 생겼지만 "보고 들은 걸 기록하고, 가능하다면 나쁜 녀석들의 이름을 적어두는 목격자"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비교적 균형감 있는 태도로 중동을 바라보며 "기억을 희석하고, 잔인함을 보고도 일부러 못 본 척하는 태도가 우리를 다시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 주범"이라고 경고한다. 2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