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업계 힘모아 R&D 전략 재정립… 설계 능력 보강, 저가 수주 논란 없애야
기자재 국산화율 높이기도 주요 과제로
중소조선사, 저가 中·日 견제 위해서 공동선형 개발 등 원가 절감책 필요
대형사의 중소형사 위탁경영도 대안… 친환경·고효율 선박 기술격차도 벌려야
2000년대 들어 일본으로부터 주도권을 넘겨받은 한국 조선업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중국의 거센 추격과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의 반격으로 중소형 조선사들이 존폐를 위협받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한국은 물론 세계 조선업을 지탱해온 '빅3'가 해양플랜트발 부실에 발목을 잡혔다. 이번 위기가 조선산업의 중심이 중국으로 옮겨가는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가운데 한국 조선업이 다시 도약하려면 해양플랜트의 핵심이 되는 엔지니어링, 기자재 기술을 확보하고 대형사와 중소형사를 포함해 업계 전체의 협력을 모색하는 등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해양플랜트, 포기할 수 없는 성장동력=지난해 현대중공업에 이어 올해 대우조선·삼성중공업의 '실적 충격'을 이끈 주범은 해양플랜트다. 상선 수주 축소에 따른 일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 조선 '빅3'는 경쟁적으로 해양플랜트를 수주했지만 결국 대규모 손실만 남겼다. 해양플랜트에 크게 덴 대우조선에서는 현재 55%에 이르는 해양 부문 비중을 40%까지 낮추고 자신 있는 상선 부문을 50%까지 높이기로 하는 등 '일단 수주하고 보자'는 과거 방식에 대한 반성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해양플랜트 실패의 원인이 국내 조선사들의 원가계산 실패와 엔지니어링·기자재 기술 부족, 과다경쟁 등에서 비롯된 만큼 앞으로도 여전히 해양플랜트는 주요한 먹거리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은 지난달 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해양 적자는 기본설계 능력과 경험 부족 때문"이라며 "한국 3대 조선소가 기본설계 역량을 키워 불확실성을 줄이면 해양도 전망이 좋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업계가 힘을 모아 연구개발(R&D) 전략을 다시 세우고 단계적 자립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설계능력이 부족해 원가분석을 제대로 못해 저가수주 논란을 부른 만큼 이 분야의 보강이 시급하다. 20%대에 불과한 기자재 국산화율을 높이는 것도 주요 과제다. 현재 기능성 조선기자재의 경우 대부분 유럽과 일본의 원천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대중공업이 연간 18억달러에 달하는 해양플랜트 기자재 물량의 절반가량을 국산화하기 위해 협력업체와 공동개발을 추진하는 등 업계도 노력하고 있지만 국가 차원의 산업기반 구축이 필요하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오름세로 바뀌면 그동안 묶였던 해양플랜트 발주가 잇따를 것"이라며 "사실상 국내 빅3 간 싸움인 만큼 제살깎아먹기식 경쟁을 효과적으로 피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 조선소 뭉쳐야 산다=국내 대형3사는 해양플랜트 부실에도 불구하고 액화천연가스(LNG)선이나 초대형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고부가가치 상선에서 중국과 일본 등 경쟁국과 큰 격차를 유지하고 있어 당장 존립을 위협받지는 않는다. 반면 STX조선해양이나 성동조선해양 등 국내 중소형 조선사는 주로 벌크선이나 중형 이하 유조선 등에서 다른 나라와 힘겨운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의 경우 낮은 인건비를 무기로 뱃값이 10%가량 저렴하다. 일본은 엔저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데다 특유의 시리즈선 건조 전략을 펼치고 있다. 시리즈선은 같은 설계도로 똑같은 배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기성품이다. 이에 따라 국내 중소 조선사도 공동선형 개발 등으로 설계나 R&D 비용을 줄이거나 공동영업에 나서는 등 고도의 원가절감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 협력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대우조선은 같은 산업은행 소속인 STX조선해양과의 시너지를 위해 철강재 공동구매 등을 추진하고 있다. 대형사의 중소형사 위탁경영도 대안이다. 대형사가 지닌 노하우를 전수하고 일감이 몰릴 때는 중소형사의 야드와 인력을 활용해 협업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삼성중공업이 성동조선 위탁경영을 위해 실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해양플랜트 부실 등 악재가 겹치며 선뜻 나서지 못하는 모양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형사 상황도 여의치 않아 중소형사를 챙기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정부나 채권단 차원에서 조선업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업계의 '새 판 짜기'와 더불어 친환경·고효율 선박 개발에 대한 꾸준한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환경오염 물질을 줄이는 에코십이나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스마트십은 국내 조선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주력해야 할 분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