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배운다는 생각으로 작품 준비… 문제아·외로운 노인의 교감 담았죠

연극 '더 복서' 무대 올린 김민기
'지하철 1호선' 명성 덕에 독일 원작자 번안 허락받아
아동·청소년극 계속 만들 것


'아침이슬'의 가수 김민기씨가 새로 선보인 연극 '더 복서'의 한 장면. /신상순 선임기자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고 배운다는 생각으로 '더 복서'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연극 '더 복서(The Boxer)'가 지난 16일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개막돼 오는 12월 20일까지 일정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극단 학전의 김민기(사진) 대표가 직접 번안하고 연출한 작품이다. 1998년 독일 청소년 연극상 수상작 '복서의 마음'이 원작이다. 음악은 연극'그을린 사랑'에서 화제가 됐던 정재일씨가 맡았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김민기의 말투는 느리지만 또렸했다. 그는 "청소년 문제에 청소년만 있는 상황은 없으며, 항상 어른들이 연결돼 있다"며 "그런 점에서 부모와 청소년이 함께 보면서도 각각의 처지에서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연극 '더 복서'는 왕년의 복싱 세계챔피언인 69살의'붉은 사자'와 일진의 심부름꾼인고등학교 1학년 문제아 '셔틀'의 만남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셔틀'은 일진들의 심부름꾼을 지칭하는 요즘 10대들 은어이기도 하다.

서울 외곽의 한 허름한 요양원.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던 전직 세계 챔피언 '붉은 사자'가 요양원의 독방노인이 돼 있다. 외롭고 무료하지만 이곳에서 조차 쫓겨나는데 두려운 붉은 사자는 거짓으로 파킨스병 환자행세까지 한다. 그런 붉은 사자의 방에 일진인'짱'의 비행을 뒤집어쓰고 사회봉사명령을 받게 된 셔틀이 페인트칠을 하러 오고, 그는 붉은 사자가 농아(聾啞)노인인줄 알고 자신의 처지를 혼잣말하다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된다. 붉은 사자는 자살 충동을 느끼면서도 제 발로 들어간 요양원에서 탈출을 꿈꾸고, 셔틀은 거칠고 불안한 사고뭉치로 보이지만 편의점 알바 누나를 짝사랑하며 괴로워하는 여린 청소년일뿐이다. 붉은 사자는 셔틀의 짝사랑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셔틀은 복싱을 배우는 조건으로 붉은 사자의 탈출을 돕는다.

김민기는 "어느 한쪽에서 외롭게 마음의 병을 앓고 있을 우리네 학교밖 10대들의 모습과 우리사회 노인문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독일 작품을 들여왔지만 국내사정에 맞게 번안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원작에서는 2차대전에 참전했던 권투선수이야기지만 한국으로 무대가 옮겨오면서 해방과 한국 전쟁, 도쿄 올림픽 등의 배경이 깔리는 식이다.

김민기는 번안공연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영ㆍ미권의 경우 공연을 그대로 카피해야 로열티를 더 받기 때문에 번안을 허락하지 않는다"며 "'지하철 1호선'의 유명세 덕에 독일 원작자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지하철 1호선' 역시 김민기가 독일 원작을 번안 연출한 록뮤지컬이다.

그는 또 "많은 적자를 내면서도 아동·청소년극을 올리는 것은 나 같은 사람이 한쪽 구석에서라도 버티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라는 말도 덧붙였다.

학전의 베테랑 배우 이황의와 배성우가 '붉은사자',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신예 김태완과 신정식이 '셔틀'로 무대에 선다. 김민기는 "독일에서 이미 검증받은 작품"이라는 말로 이 작품의 재미와 질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중학생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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