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외교-통상 분리 괜찮은가


'네고시에이터(negotiator)'란 영화가 있었다. 인질극이 벌어지는 급박한 대치 상황에 투입돼 사건을 해결하는 협상전문가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협상전문가는 고도의 심리전술에 능통하고 상대의 요구를 예리하게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노련하게 상대를 회유하고 협박 기술도 불사하면서 때로는 악당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협상이나 교섭은 지식뿐만 아니라 경험이 만들어내는 고도의 기술 영역이다.

새 정부에서 통상교섭 기능을 기존 외교통상부에서 분리해 신설되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두려는 인수위원회의 결정 때문에 정부 내는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뜨겁다. 산업과 통상을 하나의 조직으로 묶는 발상은 일면 효율성의 이름으로 포장돼 설득력을 지닌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몇 가지 심각하게 짚어봐야 할 일이 있다. 우선 절차상의 문제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결정하는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도무지 소통의 절차와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먹통이라는 표현 외에 달리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 지난 1998년 통상정책과 대외교섭 기능이 외교통상부로 일원화되는 과정은 지금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관련 부처들의 의견 수렴 절차가 있었고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 개진이 공청회를 통해 제안됐다. 민주적 절차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라는 전범을 보였다.

반면에 이번에는 어떤가. 인수위 위원 몇 명의 의견이 마치 포고령처럼 공표됐을 뿐이다. 당선인의 리더십 특성 때문에 민주주의의 퇴행이 가속화될까 우려하는 측에서는 바로 이런 행태 때문에 조짐이 좋지 않다고 벌써 걱정이다. 국회에서 정부조직 개편안을 다루는 동안이라도 전문가와 관련 부처들의 신중하고 폭넓은 의견 수렴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발상의 문제다. 1994년 통상산업부 설치 이후 통상과 교섭이 분리돼 진행되는 바람에 많은 혼선과 갈등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이유로 혼선의 시대로 되돌아가려는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국내 산업에 있어 통상 '진흥'은 국내적 영역의 이슈이며 통상 교섭은 대외적 차원의 문제다. 이 둘을 반드시 결합해야 한다는 취지가 이해를 얻지 못하는 대목이다.

더욱이 한 국가의 대외통상교섭이란 국내 일부 산업에만 국한돼 추진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의약품은 보건복지부 소관이며 농수산물이나 쇠고기는 농식품부가 관할하는 업무다. 스크린 쿼터는 문화부가 담당하고 있다.

한국은 통상으로 입국했고 앞으로도 통상으로 번영해야 한다. 통상은 국내 산업 전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국내 경제 산업 전반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종합적이고 전략적 판단이 통상을 담당하는 부처에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뿐 아니다. 성공적 통상정책으로 축적된 국부(國富)는 국가 사회 전반에 편중되지 않게 분배돼야 하고 그 책임도 정부에 있다. 일부 산업의 이익에 경도돼 정부가 편중된 정책을 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공정성은 정부 역할에서 기본이 아닌가. 따라서 정부의 통상교섭 당사자는 국내 이익집단들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둬야 한다.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통상교섭에도 꼭 필요한 요건이다. 바로 여기에 국내 산업과 통상교섭이 분리돼야 하는 전략적 이유가 있다.

세계의 많은 선진국들은 산업과 통상을 통합한 모델에서 점차 분리형으로 변화시켜왔다. 이른바 외교형 통상 조직이 그것이다. 통상교섭과 관련된 외교의 최일선 현장을 중시하는 모델이다. 캐나다는 한때 외교부와 통상부를 분리했다가 혼선만 커지고 국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자 2006년 다시 재결합하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지난 15년간 숱한 벼랑 끝 대외교섭 속에서 담대하게 협상 경험을 키워온 한국 정부의 전문적 '네고시에이터'들이 통상교섭본부에 있다. 이들의 다져진 역량이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통상과 교섭의 분리는 마땅히 재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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