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부, 큰 틀의 노동개혁 주도하라


류재우


노동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저성장 기조가 고착되고 노동절약적인 기술진보가 일어나면서 경제의 일자리 창출능력은 낮아졌다. 생산물 수요의 이동성과 변동성은 확대됐으며 기업의 외주 및 하청 의존성이 증대돼 내부노동시장의 존립기반은 약화됐다. 국제경쟁력을 가진 기업과 아닌 기업 간의 격차는 확대되고 있다. 고령화도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노사대표 기득권 고수로 타협 의문

노동시장에는 '괜찮은 일자리' 부족 문제가 심화됐다. 특히 청년층 취업난이 심각하다. 최근 청년실업률은 11%를 넘어섰는데 이는 비구직무업자의 빠른 증가가 가리키는 고용 문제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일 뿐이다.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과 다른 근로자 간의 고용조건 격차를 가리키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도 문제다. 연공형 임금체계하에서 근로자들은 연금개시 훨씬 이전에 은퇴로 내몰리고 있다.

노사정위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통상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이라는 3대 현안 과제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및 사회안전망 확충이라는 의제를 놓고 3월 말을 시한으로 타협을 시도하고 있다.

타협의 성공은 새로운 고용질서 구축을 향한 큰 진전이 될 것이다. 통상임금의 경우 입법규정을 명확히 하는 것만으로도 시장의 불확실성과 소모적인 사법 다툼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선에 합의하는 경우 청년층을 취업절벽에 세울 것으로 예상되는 정년연장법의 부작용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위원회의 노력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그러나 우려도 있다. 우선 노사 대표가 타협할 유인이 있는지 의문이다. 각 주체가 기득권을 내려놓을 생각 없이 개별 사안에 대해 손익을 따져 접근하는 경우 구조개혁을 향한 진전은 이루기 힘들다. 대타협을 약속했다지만 정해진 시한이 코앞인 지금 논의에 진척이 없다는 뉴스만 전해진다.

대표성과 관련한 문제도 있다. 예컨대 노동계 대표는 취업자의 10%도 되지 않는 노조원을 대표한다. 이중구조 완화는 취약계층의 고용조건을 개선하는 방향이 돼야 하지만 비노조원·비정규직·미래세대의 목소리가 반영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명분을 앞세우고는 기업과 정부의 부담만 늘리거나 노조와 경영계 상층부의 주고받기식 타협으로 기득권 근로자의 혜택만 키워 이중구조를 더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많은 학자와 정부 경제부서가 지적한 것처럼 이중구조 문제는 기득권 근로자의 과보호와 관련이 있다. 대기업 노조들이 조합원을 강하게 보호하면서 인력활용의 유연성을 제약하는 것이 기업의 외주나 하청에 대한 의존성 증대와 비기득권자들의 고용조건 악화에 일조하는 것이다. 이들은 많은 경우 인사권을 제약하며 심지어는 자녀들에게 고용 세습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효율성과 공정성에 반하는 일임은 물론이다.

사회적 대화, 세부사항 조정에 활용을

아마도 파견업종 제한, 쟁의기간 중 대체근로에 대한 제한 규정만 완화돼도 기득권 근로자들에 의한 경직성 문제는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를 통해 그 같은 조치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사회적 대화에만 맡기지 말고 독일의 하르츠 개혁에서처럼 공익대표 안에 기초해 큰 틀의 구조개혁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대화는 각 이해주체를 설득하고 협조를 얻고 세부사항을 조정하는 통로로 활용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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