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신규대출 억제→2금융권 대출·연체 증가 악순환

잠재 신불자 급증… 신용위험 커진다
주택담보 대출 올해 대거 만기
상환능력 취약계층 26% 달해
가계대출 추가 부실 우려 커져

여러 금융회사에 빚을 진 다중채무자들이 서울 명동 신용회복위원회상담소에서 상담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서울경제 DB


가계부실이 올해 금융시장의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잿빛 전망이 현실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경기불황에 집값 등 실물자산 가격하락 국면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 당국이 가계의 신규 대출을 사실상 봉쇄하면서 금융 연체자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잠재 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를 의미하는 사전채무조정(프리워크아웃) 신청자가 지난해 4∙4분기에 이어 올 1∙4분기까지 2분기 연속 4,000명을 돌파하면서 같은 기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은 가계부채의 이 같은 상황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더욱이 금융 당국이 은행 대출을 옥죄면서 지난해 하반기 이후 비은행권 대출이나 고금리 신용대출의 증가세가 이어져오고 있는 상황.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정상 여신→실물자산 가격하락, 금융 당국 신규여신 억제→2금융권 대출 급증→잠재 신불자 급증→신불자 급증 및 가계 부실'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의 크기가 갈수록 커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회 전반에 신용 위험의 적신호 색깔이 빠르게 짙어지고 있는 셈이다.

◇위험수위 넘어서고 있는 잠재 신불자 규모=신용회복위원회의 지난 1∙4분기 프리워크아웃 신청자 수는 4,256건으로 집계됐다. 단순 규모뿐 아니라 증가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진다는 점이 더욱 문제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세를 보면 올해 1∙4분기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프리워크아웃 신청자가 50.1%나 급증했다.

프리워크아웃제도는 금융권에 6개월 이상 연체를 통해 신불자로 전락하는 것을 사전에 막아보자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 문제는 그동안의 추이를 분석해볼 때 프리워크아웃 신청자 중 절반가량은 채무조정계획을 이행하지 못해 결국 채무불이행자(신불자)로 등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최근 프리워크아웃 신청자의 증가는 가계부채의 부실이 현실화할 것을 보여주는 '선행지표'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신복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비은행권 대출이나 가계신용대출이 무분별하게 확대됐던 여파가 서민층을 중심으로 가계부실로 표면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계부실 뇌관…금융계 연쇄부실 확산되나=지난해 가계대출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와 비교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가계대출 추가 부실이 염려되는 대목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 기준 전체 가계대출 잔액은 912조8,810억원으로 금융위기 직후였던 지난 2009년 1∙4분기 721조6,957억원에 비해 26.4%가 증가했다.

가계대출 증가는 비은행권 대출 및 신용대출이 견인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4분기 비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499조1,188억원으로 2009년 1∙4분기(438조3,268억원)보다 13.8%가 높다.

같은 기간 가계신용대출 증가세는 더 가파르다. 여신금융기관 등의 판매신용대출 규모는 지난해 1∙4분기 54조7,743억원으로 2009년 1∙4분기(35조9,638억원) 대비 52.3%나 급증했다. 은행권과 비은행권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가계대출이 증가하며 가계신용 부실의 위험을 키우고 있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올해는 대거 만기가 돌아오는 주택담보대출이 걱정이다. 올 3월 말 기준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306조9,77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연소득 대비 대출잔액 비중이 400% 이상이거나 담보가액에 대한 대출잔액 비율(강남 33%, 강남 제외 서울 40%, 수도권 49%, 지방 50% 이상)이 높은 '부채상환능력 취약계층'이 전체 주택담보대출자의 26.6%에 달하고 있다.

이 중 20% 이상이 올해 만기가 집중돼 있어 가계부실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가계 여신담당 임원은 "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억제로 시중은행들이 신규 대출을 줄이고 대출금리를 인상하는 등 서민층을 중심으로 한 가계부실화 제어장치가 없는 형편"이라며 "이대로 가다가는 올 하반기에 심각한 신용위험이 현실화할 수 있다"며 금융 당국의 선제적 대응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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