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해외 출장길에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찾은 적이 있었다. 곳곳에 펼쳐진 파란 하늘과 드넓은 해변, 그리고 하얀 집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저절로 탄성이 나오게 만들었다. 여기다 선조들이 물려준 화려한 문화유적 덕택에 해외 관광객까지 끊임없이 몰려오다 보니 먹고 사는 게 별다른 걱정이 없어 보이는듯했다. 이들이 미래 먹을거리를 위해 일부러 유적을 발굴하지 않고 남겨 놓았다는 얘기까지 들으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런 그리스가 요즘 재정위기로 국가 존립마저 위협 받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려 있다. 정치권은 구심점을 잃은 채 심각한 내분에 휩싸여 있으며 정부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공공노조의 시위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우리로서는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겠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눈길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국가존립마저 위태로운 그리스 사실 그리스 사태의 전개과정을 줄곧 지켜보노라면 계속해서 악순환만 이어지고 있을 뿐 언제 끝날지 모르는 깊은 수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 의회가 갖은 진통 끝에 긴축안을 통과시키기는 했지만 경제 정상화로 향한 긴 여정의 첫 단추를 뀄을 뿐 앞으로 넘어야 할 숱한 과제가 도사리고 있다. 일단 그리스가 예정대로 긴축안을 실행에 옮긴다면 일반 국민들은 앞으로 임금 삭감과 치솟는 물가고에 시달려야 한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게 되더라도 단지 시간만 벌게 됐을 뿐 결국 디폴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우세한 편이다. 그리스의 경우 국가경제를 뒷받침할만한 뚜렷한 제조업기반을 갖추고 있지 못한데다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도 소홀히 하다 보니 외부에서 빌린 빚을 갚을만한 충분한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방만하게 운영돼온 재정구조를 건전화하고 고통을 겪는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도 하나같이 어려운 과제들이다. 반면 지난 2008년 유럽국가 중 가장 먼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아이슬란드는 불과 2년 만에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며 성공적인 국채 발행까지 마치는 등 국제사회에 화려하게 부활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E) 등은 아이슬란드에 대해 금융위기를 거뜬히 견뎌낸 모범생으로 치켜세우고 있을 정도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도 한 칼럼에서 아이슬란드에 대해 "파산을 스스로 극복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까지 받았던 아이슬랜드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올해와 내년에 줄곧 2%대 이상의 견실한 경제성장이 예상되고 있으며 국가재정마저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부활은 무엇보다 다른 나라와 달리 부실 은행을 법정관리화하는 등 초기부터 단호한 처방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아일랜드 은행은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몰려든 고객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은행 금고는 텅텅 비었지만 납세자들의 돈 대신 채권단에게 부담을 물리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아이슬란드는 요즘 한발 나아가 유로존에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유로화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그만큼 경제 전반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이슬랜드 위기극복 본받아야 때문에 해외 언론들은 아이슬란드가 단기간에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점을 들어 그리스도 이를 본받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론 아이슬란드의 경제규모가 워낙 적은데다 과도한 자본 규제 해소문제 등 걸림돌도 남아 있어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경제위기에 몰렸다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양국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각국마다 위기 탈출의 해법이 다르기는 하지만 글로벌 시대를 맞아 우리에게도 언제든 닥쳐올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위기란 개인이든 국가든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지혜를 모아 넘기느냐 여부가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기 마련이다. 한국은 지금 어떤지. 모두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