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에 살았더라도 각방을 쓰고 제각각 삶을 살아왔다면 이미 혼인관계는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가정법원 가사9단독 강규태 판사는 A씨가 부인 B씨를 상대로 낸 이혼청구 소송에서 “두 사람은 이혼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 부부는 단지 한 집안에 함께 살았을 뿐 각자 독립적인 사용공간을 두고 실체적인 혼인생활 없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전혀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두 사람의 혼인관계는 이미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됐다고 볼 수 있고 이는 이혼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A씨는 2번의 혼인으로 2남2녀를 둔 상태에서 1969년 B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B씨가 부모 제사나 성묘 등 남편 집안의 대소사에 전혀 참석하지 않아 결혼생활 내내 불화를 겪었다. 부부는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2003년부터 한 집에 살면서 별도의 방에 각각 밥솥과 냉장고를 두고 잠자리도 따로 하는 등 완전히 분리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B씨는 각방을 쓰기 시작할 무렵부터 한꺼번에 수일분 음식을 만들어 남편에게 ‘알아서 차려먹으라’고 쌓아놓는 바람에 A씨가 영양실조로 일주일간 입원한 일도 있었다. 그 무렵 폐렴에 걸린 A씨가 10일간 치료를 이유로 방을 비우자 B씨는 남편에게 알리지 않은 채 남편 방을 세놓기까지 했다. 결국 A씨는 집으로 들어간 후에도 두 사람의 각자 생활이 계속되자 법원에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