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건설업체 A사는 올해 초 7억달러 규모의 사우디 아람코 열병합 민자발전사업에 입찰했다가 일본 건설사 컨소시엄에 끝내 고배를 마셨다. 일본 건설사는 발주처에 장기저리자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사업을 따냈다. 우리 쪽에서는 수출입은행이 나서 금융지원 의향서를 발급했지만 상대방 조건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건설에서 기술만 좋으면 일감을 따올 수 있던 시대가 지났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가 단순 도급에 치중된 해외 건설ㆍ플랜트 수주를 다양화하기 위한 지원대책을 내놓았다.
민관 합동으로 최대 86억달러(9조6,0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하는 한편 보유 외환을 동원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8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의 '해외 건설ㆍ플랜트 수주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나선 것은 해외 건설 먹거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 등 신흥국에 밀리고 기술ㆍ금융 경쟁력에서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 밀리는 샌드위치 형세가 벌써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올 상반기 해외 건설ㆍ플랜트 수주 증가율은 3.1%에 그쳐 지난 5년간 연평균 증가율인 9.7%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더구나 단순 도급사업 비중이 86%에 달한다.
정부는 우선 건설사가 금융기관과 손잡고 직접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투자개발형' 사업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민간 금융기관의 리스크를 줄여주는 새로운 형태의 '신개념 사모펀드(PEF)'를 조성하기로 했다. 수출입은행과 같은 정책금융기관이 프로젝트를 위해 꾸려진 특수목적회사(SPC)에 출자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최대 75억달러를 조달할 계획이다. 여기에 정부가 11억달러 규모의 프로젝트 투자 펀드를 추가 조성하면 86억달러의 종잣돈이 마련되는 셈이다.
건설사가 발주기관에 은행을 소개해주고 공사를 따내는 '시공사 금융주선형사업'에 대한 지원도 확대한다. 민간금융기관이 적극적으로 해외 사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보증ㆍ보험을 강화하는 한편 환율 변동 등 위험 요인에 대한 보장도 강화할 예정이다.
또한 수출입은행에 오는 2017년까지 1조8,000억원을 출자해 자금 조달 능력을 키우고 무역보험공사에도 내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1,200억원을 추가 출연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동시에 정책금융기관이 프로젝트 지원에 필요한 외화를 시장에서 조달하기 어려울 경우 외평기금에 원화를 넣고 대신 외화를 받아 프로젝트에 조달하는 일종의 '통화스와프' 창구도 열어줄 방침이다.
단순 도급 사업에 대한 지원도 강화된다. 수은과 무보의 보증 규모를 키우고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보증수수료를 인하해 숨통을 틔울 계획이다. 수은의 이행성보증은 지난해 7조3,000억원에서 2017년 15조원으로 늘어나고 무보의 보증보험은 같은 기간 4조1,000억원에서 5조3,000억원으로 확대된다. 기재부 1차관이 주재하는 범부처 해외 건설ㆍ플랜트 수주지원 협의회도 가동된다. 윤태용 기재부 대외경제국장은 "이번 지원 방안을 통해 매년 1만5,000명의 고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