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남북관계 대화가 먼저다

김성민 건국대 철학과 교수 (통일인문학 연구단장)


남북관계가 적대적인 힘의 대결로 치닫고 있다. 그것도 한반도 통일에 대한 비전과 포부를 담은 '드레스덴 선언'이 발표된 후에 말이다. 통일을 하자고 한 제안이 오히려 '칼날'이 돼 돌아온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국가 간의 대화를 실리의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됐을 때 진정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근시안적인 이득만을 계산하면서 전략적으로 보다 큰 것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일방적 통일구상 선언 북 자극만

통일은 분단된 두 국가를 합치는 것이기에 두 국가 간의 대립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것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통일일 때 그것은 민족 공멸을 자초하는 화를 불러올 수 있다. 게다가 두 세력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식에는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승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승리하는 방법도 있다. 지금 남북관계는 '힘'의 대결로 치닫고 있다. 드레스덴 선언 또한 이런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남쪽 국가의 입장에서는 북과 대결하기 때문에 힘의 우위를 보이고 대결에서 승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 전략으로도 최선은 아니다. 전쟁 또한 정치의 연장이지만 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치(人治)'다.

북은 '수령'을 중심으로 일체화된 '유일영도체계'의 국가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의 인격체처럼 행동한다. 게다가 남과 북의 체제 경쟁은 이미 남쪽의 우위로 한창 기울어진 상태이다. 북쪽도 이것을 알고 있기에 '돈을 가지고 사려고 한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흡수통일'이며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우리가 가진 힘의 우위를 과시함으로써 상대를 자극할 필요가 있을까.

장사꾼이 머리를 숙이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이며 인자(仁者)가 사람을 품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의 존재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다.

마음 얻는 자세로 소통 나서길

박근혜 대통령은 드레스덴 선언에서 "Wir sind ein Volk!(우리는 한 민족이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곧 남이 북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는 해묵은 형제 간의 불화로 생겨난 '막힌 것'을 뚫고 서로 신뢰를 쌓아가면서 우애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둘'을 전제로 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원래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며 못난 동생보다 잘난 형이 더 품어야 하는 것도 세상살이의 지혜다.

그렇기에 잘난 형이 못난 동생에게 도움을 줄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동생의 자존심을 자극하거나 생색을 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세심하게 고안된 정치전략적 접근 없이 이뤄지는 대화는 소통이 아니라 불통을 만들어내며 상대의 마음을 얻기보다 오히려 자존심의 상처를 입은 복수심만을 자극할 뿐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이라는 형식으로 발표되는 독백이 아니라 둘 사이를 통과해(dia) 흐르는 말(logos)이 되는 대화(dialogue)를 정치전략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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