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리는 어디 버리고 나머지는 개 줘라" 무참한 살인 끝에 내뱉는 면정학(김윤석)의 이 한마디에 웃을 수 있다면 이 영화가 가진 많은 장점이 돋보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2시간 36분 동안 뿜어대는 영화의 삭막함을 참기 힘들 수 있다. 2008년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추격자'는 이후 제작될 한국 스릴러들의 신호탄이었다. 그로부터 2년 만에 나 감독이 내놓은 영화'황해'는 그가 시작한 일련의 스릴러 행보에 종지부를 찍는 작품이다. 피칠갑이나 화려한 액션으로 긴장감을 만들어냈던 기존 스릴러와 달리 숨가쁘게 펼쳐지는 이야기는 반전을 거듭하고 난자하는 도끼와 칼은 사실적으로 관객의 오감을 찌른다. 영화가 시작하는 무대는 연변. 한국으로 돈 벌러 간 아내로부터 소식이 끊긴 구남(하정우)은 택시 운전을 하며 빚을 갚으려 하지만 막막하기만 하다. 구남의 절박함을 눈 여겨 본 밀항 브로커 면정학은 구남에게 "한국 가서 사람 하나 죽이고 오라"고 하고 살인을 하기 위해 한국을 온 구남은 또 다른 계략에 휘말린다. 이야기는 상영이 다 끝날 때까지 종잡을 수 없다. 이야기 한 덩어리가 끝났나 싶으면 새로 시작하고 잔인함의 강도도 더욱 심해진다. 특히 후반부에 등장하는 자동차 추격 신은 관객이 사고 장면에 함께 있는 듯 생생하고 충격적이다. 110억원의 제작비와 11개월의 촬영기간이 무리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면에서'황해'는 분명 잘 만든 영화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도 밀려오는 무미건조한 쓸쓸함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선뜻 권하기 어려운 이유다.
주인공 김구남역 맡은 하정우 산을 타는 장면이 있으면 진짜 산에 올랐고 바다에 빠지는 장면은 진짜 바다에 빠져서 찍었다. 세트장에서 찍을 법한 장면들도 모두 실제 현장에서 찍은 덕에 영화 '황해'에서 김구남 역을 맡은 하정우(32)는 고생 좀 했다. "몸이 고생한다고 해서 타협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일초도 쉽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죠." 23일 서울 중구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하정우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피폐한 구남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 같아 차기작인 '의뢰인' 촬영도 한 주 미뤄졌다고 했다. '황해'는 보통 2~3개월이면 되는 영화 촬영기간이 11개월이나 이어져 배우나 스태프들의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소문이 많았다. 하정우는 "캐릭터의 외형이 영화와 맞지 않으면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며 "매번 촬영지와 '맞짱' 뜬다는 느낌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말했다. 하정우는 주인공 김구남에 대해 "지금까지 제가 맡았던 역은 진짜 어른이 아니었던 것 같다"며 "이번에는 진짜 뚝심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영화 속 그는 경찰과 조직을 피해 도망다니고 행방불명된 아내를 찾느라 정신이 없는 과정에서도 목표를 향해 묵묵히 달리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사가 거의 없는데도 공허한 눈빛과 절박한 액션 장면이 모든 걸 말해주는 듯 느껴진다. "전 '황해'를 다섯 번 봤어요. 계속 보다 보니 구남이가 연변에서 한국으로 타고 오는 배가 '행복호'였다는 게 눈에 띄더군요. 구남이가 마지막으로 묵었던 장소도 '희망 여인숙'이었구요. 영화는 희망도, 행복도 없다고 말하지만 영화 속에 숨겨진 다층적인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이 영화가 먹먹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