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경제·정치 따로 가기

얼마 전 외국 투자회사의 애널리스트와 점심을 같이 했다. 직업이 경제신문 기자와 애널리스트인지라 당연히 화제는 한국 경제와 경기로 모아졌는데 애널리스트가 이 자리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경제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라고 해도 경제에 미칠 수 있는 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한국인들은 계속되는 불황이 대통령의 무능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연간 교역 규모가 세계 10위권인 나라의 경제가 대통령이나 경제관료의 능력에 따라 크게 달라질 리는 없다. 오히려 선진국에서는 ‘경기는 불황과 호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사이클’이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대통령의 무관심이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연정론 등 연이은 대통령의 강수(强手)와 이를 빌미로 “대통령이 경제는 안 돌보고 분란만 일으킨다”는 야당의 정치적 공세가 효과를 거두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또 대통령과 대립하는 일부 여론도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것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가 경제를 말아먹고 있는 주범’으로 몰리는 더 큰 원인은 “정치가 경제에 올인(All in)해야 한다”는 일부 국민들의 개발 독재에 대한 향수와 강박관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정치가 경제에 올인하는 것처럼 보였던 개발 독재는 수많은 부작용을 야기했고 IMF라는 국난을 잉태한 양자간의 화간(和姦)이었다. 그래서 “정치권이 기업을 도와주지는 못하더라도 일을 하려는 것을 가로막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기업인들의 주장은 투자 의욕과 도덕성 회복의 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언뜻 듣기에는 기업들이 “정치권과의 동거를 청산하겠다”는 ‘경제ㆍ정치 따로 가기’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외치는 ‘경제ㆍ정치 따로 가기’는 그에 걸맞은 책임과 행동이 수반돼야 한다. 분식회계와 골육상쟁ㆍ탈세로 시끄러운 현재의 경제 상황을 정부가 어떻게 처리하고 기업들은 그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관심이 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