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사악함을 보다 못한 하느님은 대홍수를 일으키고 노아의 방주를 통해서 걸러낸 생명들로 다시 지구를 채웠다. 이후 먹이사슬의 최상부에 위치한 인간이 다시 지구에 꽉 차오며 자연보호 등 환경문제가 심각해지고 이것이 생존권 차원의 문제로 직결돼 인간 간의 문제가 됐다. 그리고 과거 종족ㆍ종교 간 차이로 인한 집단 갈등이 앞으로는 기성세대와 신세대 내지 노소 간의 문제가 될 것이다.
세대 간 인식 차이가 확대되며 대화의 단절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늙은이는 젊은이를 낳고 키웠다. 그래서 대접을 받고 싶어하나 젊은이는 이를 마냥 수긍하지 않는다. 늙은이를 부양하는 사회비용이 증가돼 젊은이의 부담은 늘어나고 있지만 늙은이 편에서 보면 그래도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불만에 차 있다. “우리가 젊을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못 써”, “예의범절도 몰라” 등의 불만의 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별로 이득을 주지 않으면서 귀찮게 구는 늙은이가 싫어진다. 양측의 대화도 단절된다. 이제 이 양세대 간에는 절충과 타협이 필요하게 됐다. 제한된 공간인 지구에서 제한된 자원을 공유하며 서로 조화롭게 공존할 필요가 있다. 지구촌에 살면서 갖는 멤버십의 혜택을 공평하게 나눠 누려야 하고 각각 그럴 자격이 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긴 장정 끝에 고향 냇가에서 알을 낳은 연어는 흉측한 몰골로 바뀌며 죽음을 맞이한다. 늙어가며 추한 모습이 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지구클럽 멤버십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늙은이는 곱게 탈퇴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늙은이는 젊은이의 미래상이다. 젊은이가 언젠가 자신에게 닥쳐올 그날을 생각한다면 추해지고 힘없어진 늙은이를 공경하고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앞날을 위한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늙은이 또한 젊은이에 대해 일방적인 헌신과 복종만을 강요해서는 설득력이 없다. 더 이상 먹히지도 않는다. 여태까지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방식이 서로 필요하게 됐다.
우선 늙은이가 먼저 양보하도록 하자. 부모 같은 늙은이가 단상에서 내려오는 데 화답해 젊은이는 늙은이를 대화와 일상생활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긴 인생을 살아온 그의 경륜과 지혜를 사도록 하자.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의 실용주의적 접근이다. 상호 양보로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대타협의 첫걸음을 내딛도록 하자. 멤버들이 화합할 때 지구클럽 멤버십의 가치가 더욱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