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노사관계는 대량실업과 사회적 갈등을 수반하는 「총체적 구조조정」이라는 위기와 도전 속에 전개됐다. 그러다보니 고용보장을 둘러싼 노사갈등이 심화, 최근 5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하던 노사분규가 증가세로 반전됐다. 그러나 최악의 경제위기와 총체적 구조조정 등 여건을 감안하면 연초 예상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기조를 유지한 것으로 평가된다.특히 산업현장의 노조는 생존 그 자체를 위해 고용안정을 조건으로 내걸고 임금과 근로시간 축소조정을 투쟁 목표로 제시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결과「양보교섭」, 「고용안정및 노사협력 선언」으로 나타났다. 총파업보다는 노사정 양보와 협력이 위기 극복의 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결국 현대자동차 사태를 고비로 정리해고제가 산업현장에 수용되고 만도기계를 계기로 법질서 확립 분위기가 확고하게 자리잡으면서 올해 노사관계는 비교적 안정기조를 유지했다는 분석이다.
◆마이너스 수준 임금타결=올해 노사관계 특징은 무엇보다 교섭이슈가 임금인상에서 고용안정으로 급선회, 최초로 임금인상률이 하락한 점이다. 11월 현재 임금협상은 전국 100인이상 사업장 5,476개소중 4,858개소(88.7%, 전년동기 84.2%)가 타결됐다. 이들 업체의 협약 임금인상률은 사상 최초로 _2.7%(전년동기 4.4%)를 기록했다. 흥미롭게도 공기업(_3.1%), 대기업(_2.9%), 여타 민간기업(_2.6%)의 순으로 나타났다.
한편 임금동결·하향조정 사업장은 4,111개소로 전체 타결사업장의 84.6%에 달했다. 인상업체는 747개소로 15.4%에 불과했다.
◆고통분담형 양보교섭 패턴 정착=마이너스 임금인상은 임금 등 근로조건 하향조정과 최대한 고용보장 노력을 교환하는 「양보교섭」패턴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30여년의 성장시대 이후 최초로 경험하는 대량실업과 사회적 안전망이 미흡한 상황에서 일방적인 감원보다는 노사가 고통을 분담하는 형태로 충격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각 사업장마다 전개됐다. 이같은 고통분담형 문화는 임단협이 마무리된 4·4분기 부터 노사협력선언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지난 10월26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노사화합 선포식을 비롯, 200여개 중심기업에서 노사화합 행사가 열렸다.
◆노시분규 다시 증가=양보교섭에도 불구하고 대량부도및 실업 등 생존권이 위협받으면서 93년이후 감소추세를 보이던 노사분규 건수가 다시 증가세로 반전됐다. 특히 구조조정과 관련, 일부 공기업과 민간대기업 분규로 근로손실일수나 분규참가자가 지난해에 비해 대폭 증가했다. 11월23일 현재 총 117건 중 단체협약 관련 51건(48.3%), 체불임금 관련 20건(22%)으로 가장 많았다. 임금인상 관련은 29건(14.3%)에 불과했다. 이같은 결과는 구조조정을 둘러싼 고용안정 관련 단체협약과 경기침체로 금품청산 분쟁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고용조정 관련 파업증가=비록 통계상 정리해고 때문에 파업한 사업장은 8건 이지만 민주노총 총파업, 현대자동차·만도기계 파업 등 올해 모든 노사분쟁은 사실상 고용조정과 직·간접으로 연계됐다. 특히 정리해고, 인수·합병, 용역·하도급시 사전합의 등 인사·경영권을 둘러싼 노사대립과 단체협약 또는 고용안정협약 체결에도 불구 경영악화로 고용조정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노조조직률 하락, 공동교섭 요구 증대=구조좆정기를 맞아 단위조직 및 상급노동단체의 조직원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한계기업의 도산과 공공·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양노총 집계에 따르면 한국노총 3만4,062명, 민주노총 1만7,574명 등 모두 5만2,000여명이 감소했다. 지난해 연말 조직원수는 148만4,000여명, 노조조직률은 12.2%였다.
한편 고용조정에 대응한 연대투쟁의 필요성이 고조돼 연맹간 통합및 산별화 논의가 급진전, 자동차연맹·민주금속·현대금속을 통합한 거대조직의 금속산업연맹이 출범했다. 특히 금속산업연맹은 190개 산하노조 중 107개 노조교섭권을 위임받아 경총 등 사용자단체에 중앙교섭을 요구, 어느해보다 노조의 중앙교섭 요구가 증대했다.
◆노조의 정치·사회활동 강화=노조의 정치·사회활동은 노조의 정치활동이 제한적으로 허용된데다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양노총의 적극적인 정치활동 이후 크게 활성화됐다. 지난 6월4일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을 제외한 기초단체장 및 광역·기초의원에 모두 64명의 노동계 후보(한국노총 41명, 민주노총 23명)가 당선됐다. 또 중앙차원에서 사회개혁 요구를 공론화하면서 총파업 등 을 벌였다.
한편 내년에는 빅딜, 워크아웃 등 대기업 구조조정및 공기업 민영화, 경영혁신 본격화, 장기실업자 누적 등으로 노사관계및 사회불안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노동계를 중심으로 한 실업자 조직화 움직임, 대학을 중심으로 한 신규 청년실업자 조직화 활동, 민중세력의 불만 증대 등이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최영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