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의 사이의 원서동, 재동, 계동, 가회동, 인사동 일대의 한옥 밀집지역을 일컫는다. 북촌이라는 이름은 청계천과 종로의 윗 동네라는 뜻에서 유래 했으며 조선조 이래 왕자, 공주의 집들이 많았다. 하지만 계동에서 창덕궁까지는 역관 같은 중인이 거주 했고, 일부 주택들은 아직 그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북촌을 구성하고 있는 한옥은 마당이 가운데 있고 그 주위를 방과 부엌, 대청이 둘러싸고 있는 서울지역 고유의 형태를 띄고 있는데, 이는 한일합방 이후 사대부들의 몰락과 함께 집을 쪼개 팔면서 좁은 공간의 활용을 극대화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원래 1,000평 정도 되는 집이 30~40평 짜리 수십 개로 쪼개진 경우도 있다. 북촌 보존에 힘을 써온 한 관계자는 “이는 이 곳에 거주하던 이들이 집을 쪼개서 팔지언정 일본 사람에게는 팔지 않겠다는 집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왜정시대에 남산 밑에 마을을 이루고 살게 됐다”고 말했다. 북촌에는 김동진, 조소앙 같은 독립 지사들이 살았고 아직도 그런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하지만 북촌은 노태우 정부시절 북촌보존해제를 발표하면서 해마다 100채 이상의 한옥이 사라져 존립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일제의 침탈을 견뎌낸 북촌을 우리 스스로 파괴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 이 일대 현대 계동 사옥 등 오피스 건물들이 들어서며 여기에 근무하는 직장인과 유동인구를 흡수하기 위해 한옥을 허물고, 다세대주택을 건설하는 일이 잇따르기도 했다. 서울시는 한 때 북촌 파괴를 저지를 하기 위해 개발업자들이 제시하는 가격 보다 높은 값에 집을 사들이기도 했으며, 수리비를 3,000만원까지 지원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북촌의 한옥은 워낙 밀집돼 있고, 소방도로도 미비해 화재시 취약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북촌에는 약 800여채의 한옥이 보존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