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펀드 다시 봐야 하는 이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은 인간이 가진 '편견의 본능'을 잘 표현한 속담이다. 인간의 뇌는 매우 효율적이어서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 항상 새롭게 인식하기보다는 과거의 경험에 의존하려고 한다. 이는 원시 시대 생존을 위한 본능에서 비롯됐다. 수많은 위험이 도사린 야생에서는 특정 정보나 기억의 조각으로부터 빠르고 효과적인 판단을 내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이를 '휴리스틱(heuristic·고정관념에 기초한 추론적 판단)'이라고 정의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적지 않은 손실을 경험한 개인투자자들이 좀처럼 펀드 시장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는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투자자들에게 강한 휴리스틱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모펀드 수탁액은 2008년 말 233조원으로 정점을 기록한 후 최근 200조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이 주로 투자하는 주식형펀드는 2008년 말 131조원에서 2014년 6월 말 66조원으로 무려 절반이나 줄었다. 공모펀드 시장 위축은 투자자의 상당수가 아예 시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말 1,000포인트를 밑돌던 코스피지수가 2011년 3월 2,100포인트를 넘어섰지만 오히려 자금은 꾸준히 빠져나갔다. 최근에는 주가가 오르면 자금이 빠지고 주가가 떨어지면 자금이 유입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말 그대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다. 게다가 이러한 흐름이 결국 자산운용사나 펀드판매사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본래 펀드란 여러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한 다음 그 성과를 다시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금융상품이다. 직접 주식이나 채권 종목을 골라 투자할 만큼 실력이 없거나 시간적 여유가 없는 개인투자자에게 매우 유용한 투자수단이다. 투자 전문가는 투자자를 대신해 시장과 기업을 조사하고 좋은 종목을 골라 투자한다. 펀드는 적은 자금으로도 분산 투자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펀드가 가진 여러 가지 효용성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여전히 펀드가 가계 자산관리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적인 컨설팅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2020년까지 세계 펀드시장이 연평균 6%씩 성장해 100조달러 시대가 올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나라 펀드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2000년 이후부터다. 100년이 넘는 선진국의 펀드시장과 비교한다면 14~15년의 짧은 기간 동안 크게 성장했다. 오늘날 코스피 2,000포인트 시대를 연 원동력이기도 하다. 아직도 개선해야 할 점이 적지 않지만 과거와 비교한다면 제도나 시스템 전반에 있어 많은 발전을 해온 게 사실이다. 인생의 성공을 위해 게을러지고 싶은 본능을 이겨내야 하듯 투자의 성공을 위해서는 편견의 본능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펀드시장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글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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