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학자 패트리셔 애버딘은 엔론ㆍ월드컴 등 굴지의 기업들이 저지른 회계 부정을 지켜보면서 주주만능주의, 이익지상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지금까지의 자본주의는 더 이상 시대를 이끌 트렌드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녀가 제시하는 새 트렌드는 ‘영성(spirituality)’의 발견을 바탕으로 한 ‘깨어있는 자본주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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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지상주의, 회계부정 등 파국 초래흥분과 기대 속에서 21세기에 들어선 자본주의 시장은 예기치 못한 충격파를 경험한다.
마른 스폰지처럼 전 세계 자본을 빨아들였던 엔론, 월드컴, 타이코 등 거대 공룡 기업들이 상상도 못할 규모의 회계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지면서 하루 아침에 맥없이 쓰러진 것이다. 인터넷 붐으로 돈방석에 올랐던 졸부들도 정보기술(IT)주 거품이 꺼지면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회계 부정은 강 건너 불이 아니었다. 국내에서도 일부 그룹의 회계 부정 사실이 드러나면서 재벌 총수들이 잇따라 검찰에 불려갔다. 평생 쌓았던 자신의 업적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지켜본 몇몇 기업인들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길을 선택했다.
기업 시장의 이 같은 격변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어서 충격의 파고 또한 대단했다. 새 천년을 앞둔 미래학자들의 전망은 정보기술의 급격한 발전, 세계화로 인한 각국간 장벽 붕괴 등 낙관적인 기대로 가득 찼을 뿐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미래학자로 명성을 떨쳤던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와 패트리셔 애버딘(Patricia Aburdene)도 마찬가지였다. 애버딘은 존 나이스비트와 함께 ‘메가트렌드’ 시리즈를 내놓았던 인물. 82년에 출간된 ‘메가트렌드’라는 책에서 그들이 예견했던 정보화 사회, 하이테크 시대, 네트워크형 조직은 이 시대 전형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90년대 중반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메가트렌드2000’에서 그들이 화두로 내세웠던 세계화, 여성, 기술의 시대라는 개념도 21세기의 중요한 담론이 됐다.
주로 존 나이스비트와 짝을 이뤄 메가트렌드 시리즈를 써왔던 그녀가 이번엔 오로지 자신만의 이름을 내건 미래 진단서를 내놓았다. 놀랍게도 그녀의 신작은 자신이 내놓았던 진단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
그녀는 ‘기업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덫에 빠진 자본주의가 결국 회계 부정과 같은 엄청난 파국으로 치달을 것을 예견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녀의 고백은 그저 참회로 그치지 않는다.
애버딘은 주주만능주의, 이익지상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는 더 이상 미래 트렌드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하고 ‘깨어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를 새 흐름으로 제시한다.
‘깨어있는 자본주의’의 골간을 이룰 7가지 트렌드는 ▦영성(spirituality)의 발견 ▦깨어있는 자본주의의 탄생 ▦중간계층의 부상 ▦영혼이 있는 기업의 승리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자 ▦깨달음을 얻기 위한 기업의 다양한 노력 ▦사회 책임투자 등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영성의 발견’이다. 저자는 9ㆍ11 테러, 회계부정 사건을 계기로 기업들이 영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사회의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까지 배려하는 가치중심적 자본주의를 모토로 내세우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자본주의 꽃이라고 하는 주식시장도 이 같은 흐름에서 비껴가지 않는다. 펀드 회사는 물론 개인 투자자들 조차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녀는 도덕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는 미래 자본주의가 더 이상 의미 있는 발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이 책은 새천년 이후 지난 5년간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고해성사이자 새로운 미래를 내다보는 청사진이라 할 수 있다. 나이스비트의 명성에 가려져 있던 애버딘이라는 이름은 이 책에서 비로서 뚜렷이 빛을 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