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연구소 소장인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는 비장한 목소리로 이들 초일류의 두뇌들에게 설명한다.「히틀러 지배하의 독일이 먼저 원자탄을 개발한다는 사실은 인류에게는 대재앙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먼저 개발해야 합니다」
미육군성 관할「맨해튼 계획」은 극비리에 이렇게 출발되었다. 원자핵이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불행을 목표로 제조되는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그 훨씬 이전인 1939년 8월 20일께 루스벨트 대통령은 아인슈타인으로부터 한 통의 서신을 받는다.
우라늄 원소가 새롭고도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변화될 시기가 멀지 않았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점에 대해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 신속한 행동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이 단순한 서신 한 장은 전후 세계를 지배해야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정치·외교적으로 엄청난 프로젝트가 미리 마련되어야 하겠다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기도 했다. 바로 원자탄 개발인 것이다.
어쨌건 원자탄은 미국에서 먼저 개발되었고, 독일은 패망할때까지 원자탄 개발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으로 돼있으며, 폭탄은 엉뚱하게도 일본의 히로시마에 플루토늄형이 투하되었고 나가사키에는 우라늄형이 떨어뜨려졌다.
일찍이 노벨은 폭탄의 발명이 인류의 행복을 위해 이용되지 않고 살상용으로 적극 사용되는 사태에 죄책감을 느끼고, 속죄하는 뜻으로 노벨상을 제정했다. 그렇다. 양날의 칼날임을 인식한 대가이다.
원자로가 인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사용되는 긍정적 측면을 부정할 길은 없다. 그럼에도 유럽의 네덜란드 같은 몇몇 나라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원전사용을 허용하지 않는다. 원자로의 위험성을 더 두려워했던 까닭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 수력발전 역시 여의치 못한 우리나라에서 산업발전을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이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원전을 가동하는 관계부처나 관계기관에 원전을 얼마나 선의의 칼날로 바꾸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체르노빌의 참사나 가까운 일본에서의 방사능 누출사고를 강건너 불로만 인식하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김병총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