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 나의인생] (19) 사무실 마련과 전화개설

거래서점 2배나 늘어나면서 종삼 옥탑방에 사무실 마련서울과 지방 등 나와 거래를 하는 서점은 처음 시작할 때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그렇다 보니 책 배본 하랴 수금하랴 재고 파악해서 주문서 만들랴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형편이었다. 여기에다 재판과 신간기획을 하는 것도 나의 몫이었기 때문에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그렇게 바쁘다 보니 2월에는 지방서점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은 사무실과 전화 문제였다. 2월 초순 다시 찍어야 할 책들을 발주하고 난 후 사무실 겸 창고로 사용할 공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 달여 만인 3월10일 종로 3가 큰길 남쪽 골목에 있는 금강빌딩 5층 옥탑방을 계약했다. 옥탑방은 건물옥상에 블록을 쌓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은 다섯 평이 채 못 되는 가 건물이었는데 보증금 20만원에 월 임대료는 2만5,000원을 주기로 하고 입주를 했다. 7만5,200원의 청약금을 들여 전화도 신청했다. 지방 출장을 다녀온 3월 이후에는 신간준비를 서둘렀다. 당시 외국 그림책들을 눈여겨보다가 바로 이것이다 싶어 끌어안은 책이 있었는데 유년용 세계 명작 그림책이었다. 모두 12권이었는데 색감도 산뜻하고 무엇보다 그림내용이 재미가 있었다. 그 중 6권(피노키오ㆍ백설공주ㆍ아기돼지 삼형제ㆍ신데렐라ㆍ미운 아기오리ㆍ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을 먼저 내기로 했는데 예산을 뽑아보니 250만원 정도가 나왔다. 가진 자금은 훨씬 미치지 못했지만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출간을 하기로 했다. 글은 친구 소개로 만난 다큐멘터리 작가 안희웅씨가 재미있게 엮어 큰 도움이 되었다. 4월 말 전에 책을 내기 위해 이리저리 바쁘게 다녔다. 그러나 한꺼번에 6권의 그림책을 제작하다 보니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예상했던 제작비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라 부족한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책은 5월3일 저녁때가 되어서야 겨우 200 부씩 낼 수 있었다. 출간한 책은 다음날 신세계와 미도파백화점 서적부 그리고 종로의 큰 서점 몇 군데를 주고나니 끝이었다. 5월5일 조금 더 나왔지만 이미 신세계, 미도파 등에서 요구하는 수량이 많아 다른 서점에는 거의 공급하지 못했다. 책이 좀더 빨리 나왔더라면 초판 대부분을 어린이 날을 전후해서 팔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세계 명작 그림책`은 보는 사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을 만큼 반응이 좋았고, 이 책을 기점으로 예림당은 서점가에서 확실한 자리 매김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별나라 그림책`이라고 이름 붙인 케이스를 만들어 6권을 세트 형식으로도 출시했는데 이 역시 날개 돋힌 듯 잘 나갔다. 6월28일 그 동안 고대하던 전화가 개통됐다. 당시 번호는 26국에 5886번이었다. 청약비용과 설치비를 합해 10여 만원이 들어갔는데 전화기를 앞에 놓고 앉으니 친구 원유종이 들려주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무작정 상경한 이후 그 친구 집에 하숙을 할 때만 해도 그나 나나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보석감정을 배운 이후 부자가 됐다. 그 친구가 백색전화를 사서 집에 전화를 설치했더니 어머니가 너무나 감격해 밤새 한숨도 안 자고 전화기만 쓰다듬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당시 사용하던 전화는 두 가지였는데 전화국에 신청해서 가설되는 전화의 경우 `청색전화` 라고 하여 소유권 이전을 할 수 없었지만 소유권을 사고 팔 수 있는 `백색전화`는 변두리의 작은 집 한 채 값은 나갈 만큼 비쌌으니 그럴 만도 한 일이었다. 전화가 설치되니 당연히 사람이 필요했다. 곧바로 경리직원 김경숙을 채용했다. <아시아태평양출판협회장ㆍ예림 경기식물원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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