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퇴직연금 정착, 속단 이르다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7개월을 넘어섰다. 정부는 강제사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퇴직연금 계약체결 건수가 1만건을 넘어서는 등 그런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퇴직연금 계약체결 건수는 지난 6월 현재 1만314건으로 한 달 전보다 29% 늘었고 적립금액도 1,458억원으로 37.8% 증가했다. 외형적으로는 연금도입이 활발한 셈이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현재 퇴직연금에 가입한 사업장의 70% 이상은 종업원 9명 미만의 영세기업이다. 1,000명 이상 사업장은 삼성화재와 KT링크스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정부가 퇴직연금 도입 여부를 경영평가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밀어붙이고 있는 공기업은 조폐공사 단 한 곳에 그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퇴직연금 펀드들은 설정액 규모가 너무 작아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하반기에 몰려 있는 대기업의 임단협이 끝나면 퇴직연금 도입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의 생각은 다르다. 노동단체의 한 관계자는 “퇴직금을 퇴직연금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특별한 인센티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급보장 자체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서둘러 가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도입이 노사 합의를 전제로 하는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퇴직연금 도입이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미국의 경우 연금지급보증공사(PBGC)가 있어서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회사가 도산하더라도 연금의 지급불능 사태는 막을 수 있지만 우리는 이런 안전장치가 없다. 세제혜택 부분에 있어서도 근로자들이 퇴직연금 도입으로 추가로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금액이 고작 60만원에 불과하고 기업은 사외에 적립하는 연금의 손비인정 규모에 대해 불만이다. 근로자도 기업도 퇴직연금을 서둘러 도입할 만한 메리트가 없는 셈이다. 퇴직연금은 기존 퇴직금제도를 대신해 근로자들의 퇴직 후 노후생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의미 있는 제도다. 정부는 ‘이런 제도를 만들어놨으니 해당 기업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내버려두기보다는 산업현장에서 적극 도입할 수 있도록 여건조성을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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