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화의라는 최악의 사태에 봉착한 크라운제과는 경영난 극복을 위해 한 가지 방안을 착안했다. 신제품 개발비를 줄이고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외국 업체와 상호 OEM 방식으로 서로에게 제품을 공급하는 `교차마케팅(Cross-Marketing)`방식. 3년여 간의 교섭 끝에 이 회사는 지난해 타이완 이메이(I-MEI)사와 계약을 맺고 자사 6개 품목을 타이완에 `이메이`상표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중국 왕왕그룹에 `죠리퐁`을 수출하고, 호주의 식품전문기업 아노츠(Anotts)사와 합작사를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각국에서 확고한 인지도와 유통망을 갖고 있는 현지 대기업과 서로 제품을 공급하는 색다른 방식으로 시장을 뚫기 위한 해외 현지화 전략의 일환인 셈이다.
베트남에서 시장점유 1위를 달리는 LG생활건강 화장품은 기초화장을 하지 않는 현지 성향을 극복하기 위해 피부 관리 체험기회를 적극 제공하며 현지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꿔놓는 `계몽 마케팅`으로 역(逆)현지화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해외로 진출하는 기업들은 외국의 낯선 문화와 소비 성향에 어떻게 적응하고 뿌리를 내릴지를 가장 큰 과제로 꼽는다. 아무리 사전 시장조사 과정을 거친다 해도, 시시각각 변하는 현지의 취향에 부응하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이방인`으로 남는다면 시장 개척은 곧 한계에 부딪치기 때문.
식품업체 CJ나 풀무원 등이 지난해 각각 중국과 미국에 각각 연구센터를 설립한 것도 현지 식문화를 파악해서 시장 깊숙이 파고들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풀무원는 LA 기술연구소를 두부 스테이크 등 수출전략형 가공제품 개발의 주력 기지로 육성할 방침이며, CJ 역시 북경 R&D 센터를 범 화교권 시장 공략의 중심지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외국인들 취향에 맞도록 기존 제품을 변형하는 방안도 중요한 현지화 방법. CJ가 미국에 수출하는 `햇반`은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안남미에 치즈나 치킨소스 등을 곁들여 미국인의 입맛에 맞추고 있다. 해외 진출 패션업체들은 현지 유행에 맞도록 일부 제품 기획을 현지법인에 일임하고 색상 구성 등을 국내와 차별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지화 노력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 중견 식품업체인 S사는 90년대 초 중국에 현지기업과 합작으로 공장을 설립했으나 파트너와의 의견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미 3년 가까이 영업을 중단한 상태. 화장품 등 고급 이미지를 파는 소비재의 경우, “현지에서 `국산`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외제 선호 추세에 밀리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신경립기자 kls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