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 바이오필름(해외과학가산책)

박테리아는 긴축 경제에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온도, 습도, 영양분 등 주변 환경이 극도로 나빠지면 박테리아는 몸집을 3분의 1로 줄여 모든 행동을 중지하고 기약없는 겨울잠에 들어간다.그들은 이 상태로 깊은 바다 속을 떠돌거나 지하 깊숙히 묻혀 수십년은 물론 수백년도 견딜 수 있다. 이처럼 긴축경제에 들어간 박테리아를 UMB(Ultra­Micro Bacterium)라고 한다. 그러나 많은 박테리아에 있어 이같이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시절은 일부 극소수의 박테리아들이 UMB에서 깨어나 활동을 개시하는 때일 뿐이다. 먹을 것이 충분하면 박테리아는 돌과 같은 여러 물체의 표면에 달라붙어 군집생활을 시작한다. 바닷가나 개울에 깔린 돌의 표면에 미끈미끈하면서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물질이 바로 잘먹고 살찐 박테리아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배부른 박테리아들은 미끈 끈적한 막(bio­film)바로 밑에 숨어있다. 이 막은 먹이를 붙잡는 그물이기도 하고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벽이기도 하다. 이 막 아래 숨어있는 박테리아는 막이 없는 박테리아에 비해 항생물질에 대해 5백배 이상 강한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 9월말 미국 미생물학회는 박테리아가 만드는 바이오필름에 관한 학술발표회를 가졌다. 지금까지 바이오필름은 전립선염에 연루되어 있다든가 유정을 파는 굴착기를 못쓰게 만든다든가 하는 부정적인 혐의를 받고 있었지만 이때부터 산업적인 용도로 새로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몬타나 주립대학 바이오필름연구센터의 빌 코스텔론 소장은 UMB의 형태로 박테리아의 씨를 뿌린 뒤 필요에 따라 영양분을 공급하여 바이오필름을 만들게 하면 특정한 용도에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정을 굴착할 때 처음에 솟아나오는 원유는 밖으로 흘러내리는 경우가 많다. 또 유정이 구멍이 많은 암석으로 둘러싸여 있는 경우 모세관 현상때문에 구멍속에 원유가 잠겨 더 많은 원유를 버리게 된다. 이렇게 버리는 원유의 양은 전체 매장량의 15∼30%에 이른다. UMB가 원유속에 골고루 퍼졌을 때 유정속에 영양분을 다시 공급하여 박테리아들이 살찌게 만들면 배부른 박테리아들이 암석의 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 바이오필름을 만들어 원유가 구멍속에 잠기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박테리아가 만드는 바이오필름은 거의 대부분 해롭지 않다. 치석을 만들어 이를 썩게 하거나 부주의한 등산객이나 낚시꾼이 물이끼가 낀 바위에서 미끄러져 다치는 경우를 제외하면 박테리아의 바이오필름은 앞으로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다.<허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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