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2살이 된 코스닥시장이 바닥을 알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대주주의 횡령ㆍ배임 공시가 빈발하고 주가조작설이 횡행하는 등 ‘머니게임’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기업들의 실적마저 부진의 늪을 헤매면서 코스닥지수 600선을 위협받을 정도로 시장 전체가 깊은 나락에서 헤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언제쯤 정보기술(IT) 등 신기술 벤처의 요람이라는 코스닥 본래의 사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3회에 걸쳐 코스닥의 현황과 나아갈 길에 대해 짚어본다. 23일 코스닥시장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소프트웨어 제조업체인 글로포스트의 주가가 지난 20일 10.92% 하락한 데 이어 이날도 5.17% 떨어졌다. 엑사이엔씨는 2.14%, 코디너스도 4.35% 각각 하락했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줄줄이 급락세를 보인 이유는 한 가지. 재벌가 2ㆍ3세가 소유하고 있거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이는 LG가 3세 구본호씨의 구속 여파다. 코스닥시장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통했던 구씨가 주가 조작 혐의로 구속되면서 그 불똥이 다른 재벌가 인물들이 소유하고 있는 기업들로 튄 것이다. 이들 기업도 머니게임의 혐의가 있지 않느냐, 검찰의 수사가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그만큼 코스닥시장이 투자자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글로포스트는 지난해 8월 동국제강그룹 창업주인 장경호 회장의 증손자인 장수일ㆍ장준영ㆍ장원영씨 등이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엑사이엔씨는 LG가의 방계 구본현씨가 대주주이며, 코디너스는 한국도자기 3세가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들 종목은 이미 ‘재벌가 인사의 매수’가 호재로 작용, 주가가 크게 뛴 경험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터져나오는 주가 조작, 허위공시, 대주주의 횡령ㆍ배임 등의 사건들로 코스닥시장이 홍역을 앓고 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코스닥시장 하면 ‘한탕 하고 빠지기’를 먼저 생각할 정도로 시장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 같은 시장의 위기는 기업들이 자초한 면이 강하다. 최근 증권선물거래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실적예측공시를 한 코스닥 기업 중 75%의 전망치가 실제 실적과 어긋났다. 50% 이상 매출액이 다른 업체도 10%나 됐다. 사실상 대다수 업체가 ‘아니면 말고’식의 공시를 한 셈이다. 공시를 믿고 투자한 개미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실적이 이럴진대 공시 번복이나 불이행 등 사소한 불공정공시는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만연해 있다. 대주주가 끊임없이 바뀌면서 그때마다 주가도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전기전자업체인 삼협글로벌의 경우 지난 1년간 대주주가 9번이나 바뀌었다. 그동안 주가는 1,460원에서 200원까지 널뛰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깡통을 찬 개인투자자가 수두룩하다. 상당수 대주주는 주가가 오르면 지분을 처분해 거액을 챙기기에 바쁘다. 기업가정신은 간 데 없고 ‘머니게임’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들이 증시에서 사업자금을 보다 원활히 조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코스닥시장의 개설 취지는 완전히 실종됐다. 최근 들어서는 대주주의 횡령ㆍ배임 등의 사건 규모도 커지고 있다. 뒤늦게 뛰어든 개인들만 멍들고 있는 것이다. 한 증권사의 임원은 “코스닥시장은 본래 정보기술 벤처를 키우는 게 목적이었는데 지금은 그 의미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코스닥 본래 모습은 사라지고 유가증권시장의 종속변수로 변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