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 혁신 계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주주의 권한이 대폭 강화되고 기업의 주요 경영위험이 모두 공시되어 소수지배주주의 전횡을 원천적으로 막는 등의 내용이 무엇보다 관심을 끈다. 환란의 도화선이 된 대기업의 경영부실이 일부 대기업 총수들의 방만하고 독단적인 경영행태가 한몫을 했기 때문이다.OECD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취약점에 대한 처방을 제시한 셈이다. 환란의 원인이 된 우리 기업의 낡은 경영관행을 고쳐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제적인 조류이기도 하다. 소수 주주의 이익은 외면하고 불과 20%정도의 주식을 가진 총수가 경영을 좌우했던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를 고쳐야하는 것이다. 그동안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소수주주권이 대폭 강화되고 사외이사제가 도입되었으며 적대적 인수 합병(M&A)까지 전면 허용되어 부실경영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대폭 강화됐다. 정부는 또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OECD의 가이드라인은 이같은 정부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정책 추진에 큰 힘을 실어줄 것이 분명하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시장에서 활동하는 우리 기업들이 이 규약을 지키지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되기까지는 적지않은 진통과 시간이 걸릴 것같다. 무엇보다 기업의 소유 및 지배구조에 대한 재벌그룹의 인식은 거의 바뀌지않고 있기 때문이다. 10대그룹의 내부지분율이 지난 1년간 5%포인트나 높아진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재벌총수 및 총수의 친인척, 그룹계열사, 그룹 재단법인 등이 소유한 주식은 IMF사태이후 오히려 더 늘어났다. 정부의 경영개혁 촉구에도 불구하고 오너의 경영지배권은 더욱 강화되고있는 것이다. 재벌그룹의 핵심계열사에 대한 외국인투자가들의 지분이 50%를 넘어서고 소액주주운동이 워낙 거세 경영권방어에 적지않은 고충이 따를 것임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계열사의 돈을 끌어들이 는 것은 재벌의 이미지를 나쁘게 할 것이다. 경영권방어를 위한 목적이라면 총수들이 사재를 출연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재출연이 어렵다면 외국인투자를 유치하는 등 외부의 돈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 차선의 방법일 것이다. 그럼에도 계열사의 금고를 쌈짓돈 쓰듯 이용하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해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의 원칙과도 어긋난다. 부실경영의 온상이 된 우리의 잘못된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려면 기업들의 이같은 안이한 자세와 관행부터 시정돼야 한다. OECD의 가이드라인을 계기로 바람직한 한국형 기업지배구조질서가 정립되어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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