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판 워터게이트 파문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도청장치 발견 주장/불명예 퇴진 정치적 입지만회 호기 총공세【로마 UPI 로이터=연합】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전 총리가 그의 사무실내에서 비밀 도청장치를 발견했다고 주장,이탈리아 정계가 온통 들끓고 있다. 언론재벌의 총수이자 중도우파인 전진 이탈리아당의 리더인 베를루스코니 전총리는 11일 기자회견을 갖고 당사내 자신의 사무실 창틀 라디에이터에서 성냥갑 크기의 소형 무선 마이크를 발견했다고 폭로했다. 베를루스코니 전총리는 회견에서 『이것은 매우 중대한 사태로 이탈리아 국민들이 경찰국가에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며 이를 단명 총리로 물러난 것과 뇌물 수수사건 재판으로 불리해진 정치적 입지를 만회하기 위한 호기로 삼으려는 자세를 보였다. 그와 정치적 제휴자들은 도청장치가 발견된 후 잇따라 전략회의를 가졌으며 이문제를 논의할 임시의회 소집도 촉구하고 나섰다. 베를루스코니 전총리의 이같은 주장에 이탈리아의 정당들은 노선과 성향을 떠나 이를 규탄하고 나섬으로써 도청장치의 크기는 성냥갑에 불과하지만 그로 인한 파문은 폭탄에 버금갈 정도이다. 그의 정적인 로마노 프로디 현총리도 『민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요청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베를루스코니와 정치적 동맹을 맺고 있는 카톨릭당의 로코 부틸리오네 당수는 이번 사건은 이탈리아판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며 『사생활의 침범일 뿐만 아니라 그 대상이 야당 당수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비난했다. 언론에서도 이번 사건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한 건 건지려는 검사들이나 정치 스파이, 상부의 지시를 무시한 기관원의 소행 등으로 추측하고 있다. 사정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이탈리아 검사들은 국영기업들의 뇌물 수수사건들을 포함, 굵직한 부정부패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첨단 도청장치를 활용해온 것이 사실. 이 때문에 국가 관리들이나 기업인들의 검찰에 대한 불만도 팽배한 실정이다. 일부 평론가들은 그래서 이번 사건은 권력의 균형이 정부 쪽에서 이른바 「깨끗한 손」이라는 이름하에 장기간 사정활동의 칼자루를 휘둘러온 검찰 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가리키는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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