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필] 두부장수 우는 사연

두부장수들이 울고 있다. 수입된 유전자 변형 콩의 유해문제가 불거져 소비자들이 일제히 외면을 하고 있는 것이 그 사연이다. 하루 열여섯 판을 받아 놓았던 한 상점에서는 고작 세 판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도 아예 받아놓지 않는 곳도 있다. 사태가 이지경이 되자 두부업계는 호소문을 내고 공개적으로 흑백을 가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학계나 전문가들은 유해 여부가 판정난 것은 아니지만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콩이 미래에 드러낼지도 모르는 위해를 무시할 수 없다는 애매한 반응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문제를 제기한 소비자보호원측에서는 『인체에 해롭다고 말한 적은 없다. 다만 유전자 조작 콩을 원료로 해서 만들었다는 표기를 하지 않은 것을 지적했을 따름』이라고 한발 물러서고 있다.수상한 식품을 소비자들이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반대측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아직 아무 탈도 나지 않은 제품을 의혹 속에 빠뜨려 장사를 망치게 하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라면에 들어가는 기름이 문제가 됐던 「우지파동」의 사례도 있었다. 전매스컴의 비난과 비판을 받았지만 법률적 재판결과는 무죄였다. 그렇다고 이번 경우가 같아질 것이란 예단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시(是)와 비(非)는 두고 볼 수 밖에 없지만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다. 이른바 「투명성 문제」다. 무형의 윤리적 가치체계가 아니라 유형의 생산체계로 투명성 문제가 사회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투명하고 수상한 제품은 퇴출당해 기업이 쓰러질 수밖에 없게 변하고 있다. 그렇게 세상 흐름과 시스템이 구성되고 있다. 역으로 불투명성은 기업을 생으로 잡을 수도 있게 됐다. 매스컴의 무차별 공격으로 위기가 심화돼 쓰러지는 기업도 있다. 이런 기업 비극의 본질도 따지고 보면 그 전달 내용의 불투명성에 있다. IMF사태 이후 「투명성」이란 용어가 경제에 일반화되고 있다. 정보화의 큰 물결을 생각한다면 정부의 의지표현이라기보다는 시대적 산물이다. 비단 경제뿐이랴. 정치도 그렇다. 한창 공방이 치열한 「문건파동」도 투명성 여부가 핵심이 돼가고 있다. 유전자 변형 콩이 원료라는 걸 표시해라, 문건의 진실을 밝히라고 소리들을 높인다. 하지만 자기고백에 익숙치 않고 그런 문화도 배양되지 않은 터였으니 이 또한 시대적 진통과 갈등과정을 한참 겪을 수밖에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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