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증시공황/외환시장 스케치

◎“1,000단위 게시판도 없는데…”/일부은행, 늑장고시… 고객들과 마찰/재경원 “환투기와 전쟁”선포/“안정대책이 고작 외환집중제 회귀냐”30일 원화환율이 급등락을 거듭하자 재정경제원,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은 『외환시장에 무제한으로 달러를 공급하겠다』는 극약처방까지 내놓고 달러거래시 실수요증빙을 제출토록 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이었다. 외환딜러들은 외환당국의 이같은 모습에 대해 『외환시장 안정대책이 고작 다시 외환집중제로 돌아가자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트렸고 은행들은 하루종일 환율을 재고시하느라 분주했다. ○…은행들은 이날 개장 초 원화의 대미달러 환율이 제한폭까지 급등할 것으로 예상, 환율을 늑장 고시해 달러를 매입하려는 고객들과 마찰을 빚는 모습. 대부분의 은행들은 외환시장 개장 8분만에 환율이 9백84원70전으로 상한가를 기록하자 그 때서야 환율을 고시. 하지만 외환당국의 개입으로 환율이 급락하자 이날도 4∼5차례 환율을 재고시하는 소동. 특히 외환시장이 널뛰기를 계속하자 은행마다 고시환율이 제각각이어서 혼란이 초래되기도. 상업은행은 이날 상오 9시55분께 달러의 매매기준율을 9백84원으로 고시했다가 상오 11시29분에는 9백63원10전으로 재고시. 또 하오 12시18분에는 9백56원으로 변경. 이에 따라 고객들의 달러 매입가격은 2시간여만에 9백98원70전에서 9백70원30전으로 하락, 하루에 28원40전까지 차이를 보였다. 한일은행은 이날 상오 고객이 현찰로 달러를 살때 9백99원47전을 지급하도록 고시해 환율 1천원대시대 임박을 보여주기도. 한일은행은 하오 2시40분께 고객이 달러를 사는 경우 9백81원80전을 고시, 상업은행과 11원50전의 차이를 보이는 등 은행간에도 많은 차이를 보였다. ○…일부 은행에서는 대미달러 환율이 1천원대로 올라설 것을 우려, 객장에 설치된 환율게시판에 천단위까지 숫자를 게시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해프닝을 연출. 조사결과 전자게시판의 경우 1자리의 여분이 있고 수동식 아크릴판의 경우에도 촘촘하긴 하지만 숫자 하나를 더 부착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파악돼 마음을 놓는 모습. 또 각 영업점의 외환담당 책임자들은 객장의 분위기를 수시로 파악해 본점 외환부서에 보고하느라 분주한 한때를 보내기도. 일부 은행의 환전창구에는 환율이 4∼5차례 재고시되자 환율게시판의 숫자를 일일이 고치지않고 재고시될 때마다 환율고시표를 복사해 객장에 부착하기도. ○…30일 환율이 개장직후 상승한계선까지 치솟아 거래가 중단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던 한국은행 국제부는 상오11시부터 시장개입을 공개적으로 선언. 이후 환율이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다 하오2시 이후 달러당 9백65원선에서 진정되자 개입이 일단 성공한 것으로 자평. 한은 관계자는 『중앙은행이 직접 시장에 들어가 적정 환율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어줄 필요가 있었다』며 『현재 수준도 높다는 생각』이라고 평가. 지난 28일 이후 시장을 방치한데 대해서는 『국내상황은 기아사태 해법의 실마리가 풀리는 등 조건이 좋았으나 홍콩증시 폭락 등 외부여건이 워낙 나빴다』며 『환율상승압력이 너무 거세 개입이 무의미한 상황이었다』고 해명. ○…재정경제원은 지난 29일 부총리 담화문과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음에도 불구, 30일 상오 외환시장이 개장하자마자 거래가 중단되고 증시에서는 주가 폭락세가 이어지자 경악하는 분위기. 외환당국 관계자들은 시장에 불안심리가 확산되면서 환율이 개장 8분만에 상한가까지 오르자 「환투기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적극 개입할 것임을 천명. 외환당국은 이날 각 금융기관과 기업에 대한 창구지도에 나서는등 강력한 시장개입을 시작. 담당자들은 각 금융기관과 기업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시장에 다시 나올 것을 당부하면서 정부의 공식 협조요청임을 거듭 강조. 한 관계자는 최근 환율이 급등하고 있는 원인은 지속적인 상승세를 기대한 기업들이 수출대금 결제는 늦추고 수입대금 결제는 앞당기는 이른바 「리드앤 레그(Lead & Lag)」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이같은 현상을 없애야 환율이 안정될 것이라고 지적. 금융시장이 극도의 불안상태에 빠지자 재경원 내부에서는 정부가 조기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부개입이 오히려 시장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의견이 엇갈리기도. ○…지난 28일과 29일 외환시장 기능이 마비되면서 당장 필요한 달러를 구하지 못한 기업들을 위해 한국은행이 방출한 외환은 10억달러에 이르는 상태. 또 30일 환율안정을 위해 4억달러 가량이 추가로 방출된 것으로 알려져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이달중 한은의 달러공급물량을 50억달러 가량으로 추산. 이에 따라 지난 9월말 3백4억달러였던 한은의 외환보유액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에 관심이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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